가상

경연

 

 

 

신민이란 무엇이오.

수신인 줄 아뢰오.

 

??? 제가 치국 평천하가 신민의 조목인데, 이것들도 수신이란 말씀이오?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신민/제가치국평천하라는 명칭은 왜 있는 것이오.

수신은 아직 심지 않은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은 것이라,

반드시 심겨 자랄 땅이 필요하옵니다.

정원에 심으면 정원수, 가로에 심어 가꾸면 가로수라고 하는 것과 같이,

家를 무대로 수신을 행하면 그것을 제가라 하고,

國을 무대로 수신을 행하면 치국이라고 하고,

나라와 나라를 두고 수신함을 평천하라고 하옵니다.

 

그러나 신민은 분명 치인(治人)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사옵니다. 新의 목적어는 自身(자신)으로서 신민은 명명덕과 동의어인 줄 아뢰오.

 

내가 나를 새롭게 한다?

러하옵니다.

 

그럼 民은 무어란 말이오.

나를 새롭게 해줄 사람이옵니다.

 

무슨 말이오. 내가 새롭게 할 대상이 아니고 도리어 나를?

명덕을 밝히려면 밝힐 명덕이 있어야 하옵니다.

저가 있기에 내 마음에 밝힐 명덕이 發하는 법이옵니다.

 

? 저가 없으면 내 마음도 없는 것이오?

마음이야 없다고 할 수 없겠으나, 다듬을 거리도, 다듬을 수도, 다듬을 필요도 없는 다만 마음, 공허한 마음일 뿐입니다.

다듬을 마음은 없게 됩니다.

 

 

무슨 말이오. 

다듬을 거리가 바로 저 民에서 유래한다는 뜻입니다. 저 民은 다듬을 거리, 즉 밝힐 거리를 주는 사람임과 동시에 더불어 다듬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이옵니다.

 

홀로는 안되는 것이오.

절대 불가이옵니다.

밝힌다는 것은 中을 목표로 하는 것, 즉 집중(執中)이온대,

저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첫째, 마음(명덕) 즉 밝힐 거리가 없게 되는 것이고,

다음, 저와 더불지 않는 상황이라서 무엇이 과(過)하고 무엇이 모자라다(不及)고 할 것이 없게 되옵니다.

民과 더불지 않는 상황에서는 밝힐 거리((명덕)도, 잡을 中도 없는 것이오라, 홀로는 안되는 것이옵니다.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이 서로 전한 저 집중(執中)은 공허한 말이 됩니다.

홀로 한다는 것은, 표적 없이 활을 쏘아 무엇(?)을 맞춘다는 말이나 같기 때문에 불가하옵니다.

 

자명(自明)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자명은 밝히는 주체('스스로')와 밝힘의 대상('스스로를')을 겸하여 지적한 표현이옵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스스로) 스스로를, 즉 자신을 밝힌다'는 뜻이옵니다.

 

民은

내가 어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밝힐 수 있게 하는(명덕을 발하게 하고, 중을 잡을 수 있게 하는),

그로 인하여,

내가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게 하는 사람으로서

民의 의미는 與民(여민) 즉 '民과 더불어'이옵니다. 임금이 民과 더불지 않으면 무슨 수로 임금의 마음을 밝힐 수 있겠사옵니까.

 

신민 때문에 명명덕, 즉 대학은

공허한 원론에 머물지 않고 實하게 되며,

허공에 심은 '다만 나무'가 아니라 家 國 天下, 民이라는 실지에 심어 자라는 나무가 되옵니다.

따라서

 

民은 新의 목적어가 아니라 格物(격물)의 실제 모습인 줄 아뢰오.

格物(격물)은 총칭이며, 民 즉 與民(여민)은 物 즉 格物의 실제 명칭인 줄 아뢰오.

신민은 自新與民, '민과 더불어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일, 자기혁신'이옵니다.

 

격물?

알 것 같소. 품어왔던 의문이 곧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드오.

대강의 요약을 한번 해보시오.

아래 2쪽을 누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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