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사전-가나다순

-사전은 [본문순], [가다나순]이 있습니다.

-[본문순]에는 앞에서 이미 나왔던 글자라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글자는 다시 가져왔습니다. 본문에서 무슨 글자인지 잊었고, 글자색은 까맣고, 이럴 때 해당 본문의 節 번호를 찍으면 혹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나다순]은 왼쪽 프레임의 파란 글자에 걸어놓았습니다(기본연결).

-[본문순]은 왼쪽 프레임  원문의  節번호에 걸어놓았습니다.

-( ) 없이 마침표(.)로 맺은 한문은 집주의 글자 설명입니다.

-'( )안의 원문은 해당 뜻으로 쓰인 본문 예시입니다.

-『태학』에 쓰인 뜻만 기록하였습니다.

가嫁: ‘시집가다’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가家: 國 天下와 함께 영역 무대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서 격물의 구체적인 物이다. 나 자신은 이 物에 대한 나 자신이다. 누구든 家 國 天下의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가(이)可(以): ‘~할 수 있다’ (可以人而不如鳥乎; 不可以齊其家; 可以敎國人).

감監: ‘보다’ ‘거울’ 監視也. (儀監于殷).

강고康誥: 『서경』「주서」의 글 이름.

개皆: ‘모두’ (皆以修身爲本; 皆自明也).

개个: 사람 수를 가리킬 때 쓴다. 一个臣은 한 사람의 신하.

거擧: ‘등용하다’ (見賢而不能擧).

걸주桀紂: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과 은나라 마지막 임금의 이름. (桀紂率天下以暴).

격格: ‘~에 이르다’, ‘~에 임하다’ 至(이르다)의 뜻으로 마음이 物과 관계하는 행위를 이른다. →致知.

격물格物: →致知.

견見: ‘보다’ (見君子而后; 如見其肺肝然; 視而不見).

겸謙: ‘誠’과 동의어. 謙快也足也. (自謙).

경敬: 1)‘그윽히’ (於緝熙敬止). 2)‘공경(하다)’ (爲人臣止於敬; 之其所畏敬而벽焉). ※1)의 敬은 2)의 공경심의 體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니, 소위 誠敬, 居敬의 敬이다.

계돈鷄豚: ‘닭과 돼지’ (不察於鷄豚).

고孤: ‘고아’ 幼而無父之稱. (恤孤).

고顧: ‘살피다’ 顧謂常目在之也. (顧諟天之明命).

: ‘예전에’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고故: ‘그러므로’

공恐: ‘두려워하다’ (恐懼).

공구恐懼: ‘두려워하다’

과寡: ‘적다’ (食之者寡).

과過: ‘태만’ ‘過怠’ (退而不能遠過也).

광廣: ‘넓다’ (心廣體胖).

교敎: ‘가르치다’ (其家不可敎而能敎人者無之).

교交: ‘사귀다’

교태驕泰: ‘교만과 방종’ 驕者矜高 泰者侈肆. (驕泰以失之).

구求: ‘구하다’ ‘요구하다’ (心誠求之; 求諸人).

구懼: ‘두려워하다’ (恐懼).

구具: ‘모두’ 具俱也. (民具爾瞻).

구舊: ‘옛’ (舊邦).

구口: ‘입’ (不啻若自其口出).

구苟: ‘진실로’ 苟誠也. (苟日新日日新又日新).

구범舅犯: 사람이름. 晉文公(진문공) 重耳(중이)의 외삼촌.

구우丘隅: ‘언덕 모퉁이 수풀’. (止于丘隅) 

국國: 나라. →家

군君: ‘임금’

군자君子: 1)‘成德者’ (君子無所不用其極; 有斐君子; 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君子必愼其獨也; ). 2)‘지배계급의 사람’ (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

귀歸: ‘시집가다’ 婦人謂嫁曰歸. (之子于歸).

극克: 能의 뜻. (克明德; 克明峻德; 克配上帝)

극極: ‘지선의 경지’ (無所不用其極).

근近: ‘~에 가깝다’ (近道矣).

긍矜: ‘불쌍히 여기다’ (哀矜).

기機: ‘방아쇠’ ‘스위치’ ‘버튼’ ‘키’ 등 작은 것이지만 큰 영향을 일으키게 하는 장치. 發動所由. (其機如此).

기欺: ‘속이다’ (毋自欺).

기己: ‘자기’ (人之視己; 有諸己而後求諸人;若己有之).

기技: ‘재주’ (無他技).

기其: 1)이그저의 ‘그’, ‘자신[기]의’, 영어의 정관사와 유사한 ‘그’ (欲治其國者; 知其所止; 君子賢其賢而親其親; 不得盡其辭; 君子必愼其獨也; 食而不知其味; 之其所親愛而벽焉; 人莫知其子之惡; 其機如此;  其所令反其所好; 其爲父子兄弟 足法而后民法之;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2)乎를 문장 끝에 달고, ‘어찌 아니(豈不)’의 의미를 지니거나, 주관적 단정을 나타내는 감탄의 뜻 ‘~라 할 것인저’의 의미를 지닌다. (十目所視 十手所指其嚴乎 ‘어찌 엄하지 않겠는가.’ 또는 ‘엄하다 할 것인저’). 3)‘如의 앞에 붙어 其如’의 형식으로 如를 강조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其如有容焉). 4)‘與其~寧-’의 형식으로 ‘~하기보다는 차라리 -하는 것이 낫다’의 뜻을 나타낸다. (與其有聚斂之臣寧有盜臣 취렴하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내것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것이 낫다).

기淇: 강이름.

남산南山: ‘남산’ ‘마뫼’

내內: ‘안으로 하다’ ‘중시하다’ (外本內末).

녕寧: →與其.

능能: ‘할 수 있다’, ‘제대로’, ‘잘’ (能靜; 民之不能忘也; 能敎人者; 能喩諸人者; 寔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擧).

단단斷斷: ‘무던하다’ 誠一之貌. (斷斷兮).

대大: ‘크다’ (大畏民志; 君子有大道).

덕德: 德은 得으로 본다. 1)'性' 천명이 性이라고 하는 『중용』의 정의에서 命은 주는 쪽을 가정한 하늘이며, 性은 받은 命이니 物에 내재한 실제의 하늘이다. 德性은 德이 곧 性이란 뜻으로 德과 性을 연결한 말이다. 이 性은 理로서 仁義禮知가 그것이다.  2)'마음(明德)' 천자가 누구를 상장군으로 임명한다고 할 때, 천자의 임命은 상장군의 性(상장군을 상장군이게 하는 무엇)이 된다. 이 때 천자의 命은 천자의 말(로고스logos)이며, 이 말은 文化(증표가)되어 나타난다.임명장, 종이에, 천에, 칼에 천자의 命이 새겨진다. 이 경우 命의 내용이 새겨진 임명장, 칼이 또한 德이다.  종이니 천이니 칼이니 하는 것은 氣를 표시하고져 쓴 표현이다. 즉 氣를 포함한 것으로 仁義禮知의 마음을 德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明德이 바로 그것이다. 사단, 孝滋弟, 忠恕, 道心(반대말이 非道心인 道心), 峻德, 盛德 등의 표현이 다 明德의 다른 표현이다. 마음의 善한 속성을 표현한 이름들이다. 3)'덕행' 상장군은 임명(장)만 받은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군사와 병기를 받는다. 상장군은 이 군사를 훈련하고 병기를 잘 다듬어 천자의 명을 100% 시행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되어 천자의 명을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게 된 상태를 德이라고 한다. 후천적으로 훈련을 통하여 얻은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10%되는 경우도 있다. 50%되는 경우도 있고. 이 때문에 德이 많다 적다는 표현이 가능하게 된다. 기본자산을 이용하여 확장한 富와 같은 면이 있다. 進德, 觀德, 積德, 大德 小德 등의 표현이 이 경우에 쓰인다. 以德行仁은 체득한 만큼의 德에 따라 仁을 행하는 것이므로  行仁이 곧 誠이 된다. 以力假仁은 이와 반대가 된다. 爲政以德, 道之以德이 이러한 쓰임이다. 4)사람마다 하늘이 부여하는 임무. 1) 2) 3)은 공통적인 설명이고, 이러한 공통적, 포괄적인 명령(사람이 되어라)에 더하여, '이런 일을 하는사람이 되어라'라는 구체적인 명령이 필요할 것 같다. 장군 계급장만 달아놓고 보직을 안주면 그만 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보직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직을 德이라고 하는 것 같다. 『논어』「述而」제22장 '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의 德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5)'은덕' 남에게 베푸는 은혜.

도桃: ‘복숭아(나무)’ (桃之夭夭).

도道: 1)‘길(路)’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는 무엇. 현실과 이상, 현재와 미래 등이 공존하는 상태 또는 공존하게 하는 무엇이다. 현실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이상을 향하여 있다. 이 때문에 道는 현실을 내포한 목표이며 이념이기도 하다. 2)법(法). 예)書道는 書法. (君子有大道; 生財有大道). 3)理의 별칭: 일용, 실제상황에서 부르는 理. 예) 道理. 大學之道와 知所先後則近道와 絜矩之道 등에서 道의 용례는 道가 동사가 아니라는 한에서 의미가 넓다. 4)‘~을 뜻하다(言)’. (如切如磋者道學也; 道盛德至善民之不能忘也; 道得衆卽得國失衆卽失國; 道善則得之不善則失之矣).

도신盜臣: ‘도둑질하는 신하’

독獨: 자신만 아는 자신(意)의 상태. 獨者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 (愼其獨).

동同: ‘함께하다’ (不與同中國).

득得: 1)‘할 수 있다’ 能의 뜻. (不得盡其辭). 2)‘얻다’ (不得其正; 得衆卽得國; 善則得之不善則失之矣).

락樂: 1)‘즐기다’, ‘(정신문화에 속하는 미풍양속 등)즐길만한 것’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樂只君子). 2)‘요’로 읽어 ‘좋아하다’ (有所好樂則不得其正).

란亂: ‘어지럽다’(本亂而末治; 一人貪戾一國作亂). ↔治.

려戾: ‘(도리에)어긋나다’ (一人貪戾).

려慮: ‘헤아리다’ ‘살피다’ (能慮).

려민黎民: ‘인민’ 黎는 黑(흑)으로 黎民은 검은 머리의 인민(冠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또는, ‘旅려’ ‘衆’의 뜻으로 ‘많다’로서 黎民은 衆人.

렴斂: ‘거두어들이다’ (聚斂).

령令: ‘(정치적인 지시를) 발령하다’ (其所令).

로老: 1)‘노인’ ‘父兄’ (上老老). 2)‘(노인을)공경하다’ (上老老).

록죽菉竹: 푸른 대나무(숲)

류流: ‘내쫒다’ ‘귀양보내다’ (放流之).

륙僇: ‘살륙하다’ ‘륙시하다’ 戮(륙)과 同. (爲天下僇矣).

리利: 1)‘물질적인 혜택(을 잘 이용하다)’ (小人樂其樂而利其利). 2)義의 상대어로서 중심을 잃고 편향된 소위 물질적 이로움. (此謂國不以利爲利以義爲利也).

마磨: ‘갈아 광내다’→如琢如磨

마승馬乘: 네 마리가 끄는 말(수레). (畜馬乘).

막莫: ‘~아니다’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말末: 나무의 지상부→本

망忘: ‘잊다’ (民之不能忘也; 於戱前王不忘; 沒世不忘).

망인亡人: 亡命자.

맹헌자孟獻子: 노나라 대부 仲孫蔑(중손멸).

면만緡蠻: 꾀꼬리 울음 소리.

명덕明德: 마음의 별칭.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집주에 표현된 明德의 정의는 틀림없는 마음이다. 心者人之神明 所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맹자』「진심」상편 제1장의 집주). 心의 정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明德은 일단 일상에서 쓰는 心과 같이 상용할 수 있는 말이다. 明德과 心 명심보감이라는 책이름에서 이르는 명심의 心이나 明明德의 明德이나 같은 뜻일 것이다. 心과 明德은 통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明德이라는 말이 있고 心이란 말이 존재한다면 明德이라고 쓸 때와 心이라고 쓸 때의 구분은 있다. 心은 마음을 나타내는 말로서는 가장 범위가 넓은 말이다. 明德은 心에 비하여 사용범위가 좁다. 마음을 통틀어 말하면 心이다. 明德은 心 가운데 明한 부분이다. 이러한 明은 정도의 차이 즉 광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므로 明德의 측면에서 보면 마음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성인이나 衆人(일반인)나 다 같다. 그러나 心으로 말하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성인과 중인의 마음이 같지 않다. 광석에 비유할 수가 있다. 광석이 금을 함유하고 있는 정도는 광구마다 광석 마다 다를 것이다. 광석은 心을 비유하며, 그 안에 박힌 금은 明德을 비유한다. 광석으로 말하면 돈 잘 벌어주는 광구와 그러하지 못한 광구의 광석이 다르다. 그러나 금으로 말하면 다 같은 것이다. 이것이 明德과 心이 다름을 설명하는 방식의 하나이다. 心은 범위가 넓은 말이므로 이렇게 저렇게 이용에 자유롭다. 그 중에 心은 氣로써 理인 性과 상대하여 쓸 수 있다. 心의 경우 心卽氣, 性卽理란 용어의 대비가 가능하지만 明德은 性과 상대하여 쓸 수가 없다. 이상은 남당 한원진의 구분을 따른 것인데, 상대하여 쓸 수 없는 까닭은, 明德이 性의 의미를 겸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이건 明德은 情을 전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明德은 情인 것이다. 明德은 心의 用으로서 情을 포함하지 않고는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明의 조건만 갖추어지면 일상에서 쓰는 마음이라는 말과 明德은 합치한다.

명明: ‘밝히다’ 속어로 쓰는 ‘밝힌다’는 말이 明明德의 明과 같다고 본다. 속어의 의미는 무엇을 매우 좋아하여 그것을 즐기거나 또는 항상 구한다는 것이다. 이 곳의 明 역시 이런 뜻으로 보면 근사할 것으로 보인다.(明明德).

명命: 1)天을 의인화하여 명령자로 파악한 명칭. 『중용』天命之謂性의 경우 天命이 바로 性으로서 만물에 내재한 하늘이며, 만물을 만물이게 하는 만물의 리치이다. 仁義禮智가 바로 그것이다. 天之明命卽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爲德者也. (天之明命). 2)‘하늘의 뜻’이라고 번역이 가능한 것으로 理와 氣를 겸한 표현이다. 하늘의 歷數, 하늘에 딸린 運數 運命 등이 이에 속한다. (其命維新; 峻命不易; 惟命不于常). 3)擧而不能先命也의 命-命은, 鄭氏云當作慢 程子云當作怠 未詳孰是정씨는 慢(태만), 정자는 怠(위태 태만)라고 하는데 어느 게 옳은지 아직 모르겠다).

명명덕明明德: →新民

모질媢疾: ‘모짊’ ‘모질게 하다’ 媢忌也. (媢疾以惡之).

목目: ‘눈’ (十目所視 十手所指其嚴乎).

목목穆穆: ‘거룩하다’ 穆穆深遠之意.

몰세沒世: ‘세상을 뜸’, ‘죽어도’, ‘영원히’ (此以沒世不忘也).

묘苗: ‘(식물의)모’ (莫知其苗之碩).

무毋: ‘無’와 통용. ‘~함이 없다’, ‘~하지 말라’ (毋自欺也; 所惡於上毋以使下).

무務: ‘힘쓰다’ (務財用).

무無: 1)‘없다’ (無所不用其極; 必也使無訟乎; 無情者; 無諸己而後非諸人; 無如之何). 2)‘무엇(何)’ (楚國無以爲寶).

문聞: ‘들리다’ (聽而不聞).

문왕文王: 周나라의 시조.

물物: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존재하는 모든 것. (物有本末; 格物).

미味: ‘맛’ (食而不知其味).

미未: ‘아직 ~아니’ (未之有也; 殷之未喪師;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미美: ‘좋은 점’ (惡而知其美者天下鮮矣).

민民: ‘인민’, 태학이 기술된 당시는 일인이 君인 시절이므로 이 民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下民의 뜻이 상당 작용하고 있다. 이는 시대상황이 반영된 것일뿐 民이 근원적으로 下民에 국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후좌우상하의 人이 다 民이다.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 등의 人이 다 民이다. (新民; 惟民所止; 民之不能忘也; 大畏民志; 民從之; 民法之; 上老老而民興孝; 黎民).

박薄: ‘박하게 하다’

반명盤銘: 세수대야에 새긴 글. 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

반反: ‘~에 반대되다’ ‘~에 반하다’ (反其所好).

반胖: ‘安舒’ ‘태평스럽다’ (心廣體胖).

발發: ‘일으키다’ ‘(돈을)벌다’ 發猶起也.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방기邦畿: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왕국. (邦畿千里).

방邦: ‘나라’ (舊邦; 邦畿千里).

방放: ‘내쫒다’ ‘추방하다’ (放流之).

배倍: ‘배반하다(背)’ (民不倍).

배配: ‘짝하다’ ‘합치하다’ ‘응하다’ 配對也. (克配上帝).

백百: 일십백천의 백. (百乘之家).

백승지가百乘之家: 유사시 전차 백승을 낼 수 있을 食邑(식읍)를 가진 가문.

벌伐: ‘베다’ ‘자르다’ (伐氷之家).

법法: ‘본받다’ (足法; 民法之).

벽辟: ‘(중심을 벗어나 한 곳으로)치우치다’ 辟猶偏也. (之其所親愛而벽焉).

병迸: ‘내쫒아 제거하다’ 迸猶逐也. (迸諸四夷).

병並: ‘함께’ ‘나란히’ ‘동시에’ (菑害並至).

보寶: ‘보배’ ‘보물’ (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

보保: ‘보살피다’ (保赤子; 以能保我子孫黎民).

본말本末:→本

본本: 나무의 뿌리(지하부), 사물의 핵심. (以修身爲本; 知本; 德者本也財者末也; 外本內末).

부고府庫: 재물을 넣어두는 창고. (府庫財).

부모父母: ‘부모’

부夫: ‘그(其)’ (菑必逮夫身).

부父: ‘부모’

부否: ‘없다’ (其本亂而末治者否矣)

부富: ‘재화(가 많은 것)’ (富潤屋 德潤身).

분忿: ‘화내다’ (忿懥).

분僨: ‘망치다’ 僨覆敗也. (一言僨事).

분치忿懥: ‘화내다’ 忿懥怒也.

불不: ‘아니’

불拂: ‘역행하다’ ‘거스르다’ 逆也. (拂人之性).

비俾: ‘(~으로 하여금)-하게 하다(使)’ (違之俾不通).

비斐: ‘아름답다’ 斐文貌. →有斐君子

비非: 1)‘비난하다’ ‘그르다하다’ (非諸人). 2)‘~아니다’ (非其財者).

빙氷: ‘어름’ (伐氷之家).

사四: ‘4’

사師: ‘많다’는 뜻에서 나와, ‘군사(軍師)’ ‘군대’ ‘벼슬이름(太師)’, ‘인민’, ‘首都(수도.京師)’ 의 뜻으로 쓰인다. 師衆也. (師尹; 喪師).

사辭: ‘말(言)’ (不得盡其辭).

사事: 1) ‘일’ 物은 홀로 쓰면 物이지만, 物과 事로 구분하는 경우(나란히 쓰는 경우), 物은 명사에 해당하는 것이고, 事는 동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物은 존재하는 낱낱의 것이고 事는 이 낱낱의 관계작용이다. (事有終始). 2) ‘섬기다’ (孝者所以事君也).

사使: 1)‘使(누구)~’형식으로 ‘(누구)로 하여금 ~하게 하다’ (必也使無訟乎; 小人之使爲國家). 2)‘부리다’ (慈者所以使衆也; 所惡於上毋以使下).

사윤師尹: 태사 벼슬하는 윤씨. 赫赫師尹,

사이四夷: 중국이 아닌 이방인의 나라. (迸諸四夷).

산散: ‘분배하다[되다]’ (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상제上帝: ‘하늘님’ ‘하느님’ 하늘에 주재성을 부여한 명칭. 주재하는 하늘. (克配上帝).

상常: ‘불변(하다)’ (惟命不于常).

상尙: ‘庶幾’ 庶幾는 문장의 내용을 미래 희망적, 확신적, 긍정적이게 하는 데 쓴다. 우리말로 변역하면 ‘생각하건대~이겠다’로 하면 근사하겠는데 ‘~’의 내용을 회망적 긍정적 확신적인 것으로 만든다. 尙庶幾也. (尙亦有利哉).

상喪: ‘잃다’ ‘喪失(상실)하다’ (未喪師).

상上: 1)‘主君(임금)’ (上老老; 上長長; 上恤孤). 2)‘위(어른)’ (所惡於上; 上好仁而下不好義者).

색色: 후각인 ‘臭(냄새)’ 와 상대하여 시각의 대상, 남여의 성욕 또는 애정, 남여(의 성적 즐거움). (好色).

생生: ‘생산하다’ (生財有大道).

서舒: ‘느리다’ (用之者舒).

서恕: 忠과 짝하여 忠恕로 쓰인다. 공자의 一以貫之에 대한 증자의 설명이 忠恕이다(『논어』「리인」제15장). 집주에서는 忠을 盡己, 恕를 推己로 설명한다. 忠과 恕는 두 개의 物이 아니다. 忠이나 恕나 다 道心(率性의 道心)이며 하나의 明德이다. 이것들이 두 개로 인식되는 것은 관점 때문이다. 내적 진실성을 보면 明德은 忠이고, 외적 지향성으로 보고 말하면 恕이다. 지향성이라고 한 것은, 明德이라는 마음의 됨됨이가 외부에 상대하는 物(오륜, 가국천하)이 있어야 하고, 그 物에 향하여 가게 되어있다. 忠恕는 마음 즉 明德의 속성에서 오는 명칭의 차이일 뿐 동일한 明德이다. 집주의 설명에 따르면 忠恕를 道의 體와 用으로 구분한다. 이렇게 體用으로 보면 忠恕가 두 개의 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明德이라면 반드시 忠德이며, 반드시 恕德이다. 忠恕는 明德의 다른 이름이다.

서인庶人: ‘衆人’. 庶나 衆이나 ‘많다’는 뜻. (自天子以至於庶人).

석石: ‘바위’ ‘봉우리’

석碩: ‘크다’ (莫知其苗之碩).

선善: 善의 기본은 마음(심지각)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기본위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면 다듬어진 善이 된다. 事理에 합당해야 한다. 物理가 있고 事理가 있다. 物理에 합당하면(合理) 眞이라고 한다. 사람이 늙어병들어 죽는 것은 物理에 합당한 것으로 眞이다. 그리고 동시에 사리에 합당한 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절하는 것은 物理에는 합당하지만 事理로 보아 합당하지 않다. 그래서 眞일 수는 있지만 善은 아니다. 物理로 보면 눈물이 없고, 事理로 보면 회노애락이 있다. 이것이 物理와 事理의 차이점이다. 事理란 경우가 복잡하다. 事理라고 할 때의 그 事는 家 國 天下라는 무대에서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의 관계 속에 펼쳐진다. 배고플 때는 먹는 것이 善이지만 배부를 때는 안 먹는 것이 善이듯이 善은 경우수가 많은 만큼 고정적이지 않다. 家 國 天下와 오륜이라는 여러 각각의 상황에서 그 때마다 합당함의 극치를 이루면 그것이 至善이다. 至善 역시 고정된 절대선이 아니다.

선鮮: ‘적다’ (惡而知其美者天下鮮矣).

선先: 1)‘먼저’ (先治其國; 擧而不能先). 2)‘먼저 하다’ (所先後). 3)‘선도하다’, ‘이끌다’ (毋以先後),

성成: ‘이루다’ (成敎於國).

성誠: ‘진실’, ‘진실케 하다’(誠其意). 眞은 ‘참’이다. ‘참’은 ‘차다(滿)’의 명사형이다. 속이 비지 않고 알찬 것, 꽉 찬 것이 ‘참’이며, 빈 것은 ‘거짓’이라고 한다. ‘거짓’은 ‘거죽’ 즉 껍데기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實은 채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런 뜻을 가질 경우의 誠의 목적어는 善한 것이어야 한다. 誠意의 意는 善意이다. 2) ‘차다(滿)’. (誠於中形於外). 이 문장의 誠은 善 不善을 겸하여 하는 말이다. 3)‘진실로’, ‘알차게’ (心誠求之).

성盛: 그릇에 가득한 상태, 위대한 모습을 형용하는 말. ‘盛大하다’ (盛德至善).

성덕盛德: 明德의 경우와 같이, 德의 속성(善일변)을 붙여 표현한 德의 명칭. 德 본연의 속성이 盛한 것임을 표현하였다. 盛은 그릇에 비여 있지 않은 상태, 또는 그릇을 비여 있지 않게 함의 의미를 지닌다. 盛土(성토)는 흙이 모자라 움푹 들어간 곳에 흙을 채워넣어 쌓아올리는 일이다.

성의誠意: 意는 ‘意思’, ‘意欲’. 意는 意思로서 일상에서 말하는 생각이다. 또 意欲으로서 欲이다. 誠意의 意는 善意이며, ‘(~을 하고자 하는)意’, ‘(~에 대한)意 등의 형식으로 수식이 됨으로써 구체화된다. 誠意의 意는 태학의 意이며, 明德에 대한 意이며, 明明德하고저 하는 意이며, 民에 대한 意이며, 新民하고저 하는 意이며, 物 知 心 身에 대한 意이며, 格物致知 正心修身하고저 하는 意이며, 家 國 天下에 대한 意이며, 齊家 治國 平天下하고저 하는 意이다. 誠意는 이러한 意를 알차게 하는 것이니, 태학을 통째로 부르는 말이 된다.

소所: 동사의 앞에 붙어 1)동사를 명사화한다. (所先後; 其所厚者薄; 無所不用; 惟民所止; 所謂; 無所不至; 有所恐懼; 之其所親愛而벽焉; 孝者所以事君也; 其所令; 所藏乎身; 所惡於上; 民之所好). 2) 타동사를 수동형으로 만든다. 이 경우 대개는 ‘爲~所-’의 형식을 취한다. 예)爲~所殺(~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다). (十目所視 十手所指).

소위所謂: ‘이른바’

소인小人: 1)‘국민’, ‘백성’ (小人樂其樂而利其利). 2)‘德이 빈약한 사람’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솔率: ‘이끌다’ (堯舜率天下以仁).

송訟: ‘訴訟의 일’ (聽訟).

수雖: ‘비록’ (周雖舊邦; 雖不中不遠矣; 雖有善者亦無如之何矣).

수手: ‘손’ (十目所視 十手所指其嚴乎).

수修: '다듬다' '닦다' 齊와 治와 平이 다 한 뜻이다.

수신修身: 1)팔조목의 하나로서의 修身. 身은 명덕이라는 情을 내용 하고 있다. 身은 情이다. 修身은 情을 닦되, 과불급이 없는 경지를 목표로 하는 일이다. 마음은 물과 같은 무엇이 있어서 물에 비유한다. 물은 외부에서 힘이 미쳐오면 물결을 일으킨다.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 외부의 힘의 작용과 모양에 따라 일정하다. 조약돌에 퐁당하고 바위에 첨벙한다. 마음은 그러하지 않다. 조약돌에 첨벙하기도 하고 바위에 퐁당하기도 한다. 화를 내야할 일에 마음을 누그러 뜨리기도 하고, 작은 일에 빨끈 첨벙하기도 한다. 마음의 이러함을 교정하여 상황에 딱 맞도록 자신의 情을 표출하도록 하는 공부가 修身이다. 다음으로, 명경지수를 염두에 두고 비유하는 게 있다. 물은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결 즉 파동이 없이 고요하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외부의 파동이 없는데도 자꾸 일렁거린다. 과거의 어떤 영향 때문에 또는 미래에 있을 무엇 때문에 비정상적인 파동이 일렁인다. 이러한 물결을 客情이라고 하며, 客情이 일렁거리는 것을 妄動이라고 한다. 이것도 마음의 탈인 것이다. 마음의 이러한 탈, 객정의 망동을 제거하여 명경지수처럼 만드는 공부의 명칭이 바로 正心이다. 正心은 마음의 體를 正하게 하는 공부이고 修身은 마음의 用을 修하는 공부이다. 體와 用이 둘이 아니듯이 正心과 修身은 하나의 마음 공부이다. 2)明明德의 조목을 대표하는 修身. 格物致知, 正心修身을 하나로 묶은 표현이 修身이다. 하나의 묶음이 가능한 것은 格物致知와 正心修身이 明明德을 구체화한 조목이라는 것 때문이다. 이 경우 修身은 明明德과 동의어이다.

순률恂慄: 瑟과 僩의 해석. ‘居敬’이 모습이 아닌가 한다.

슬瑟: 내면의 빈틈 없는 상태, ‘곰곰하다’ 瑟嚴密之貌.

승乘: 말 네 필. (百乘之家).

시고是故: ‘그러므로’, ‘이 때문에’

시視: ‘보다’ (人之視己; 視而不見),

시啻: ‘뿐’ (不啻若自其口出).

시施: ‘장려하다’ ‘가르치다’ (爭民施奪).

시詩: 『시경』

시諟: 이그저의 ‘이’ 諟猶此也 或曰審也. (顧諟天之明命).

시이是以: ‘이 때문에’ ‘그러므로’

식食: ‘먹다’ (食而不知其味).

식寔: 이그저의 ‘이(是)’, ‘바로(正)’ ‘실로(實) (寔能容之).

신민新民: 明明德의 실제 명칭이다. 明明德은 나의 明德을 밝히는 일이다. 明德이란 마음의 파동이다. 물의 물결처럼 마음도 물결, 즉 파동인 것이다. 이 파동은 외부의 작용을 받아서 인다. 외부라는 것은 家 國 天下라는 무대에서 오륜이라는 인륜으로 인한 모든 것들이다. 따라서 오륜의 인륜이 아니면 明德은 發할 것(일 것)도 없고 또 明할 일도 없다. 그러므로 明明德, 마음을 밝힌다고만 하고 그 구체적인 무엇이 없으면 明明德은 한갓 관념에 불과하게 된다. 생각 속의 나무에 불과하게 된다. 명명덕이라는 생각 또는 當爲, 또는 한 그루 나무는 그 실제, 심겨 자랄 實地를 필요로 하게 된다. 新民이 바로 명명덕의 실제를 표현한 명칭이다. 民은 나의 마음에 명덕을 發하게 하고, 더불어 그 명덕을 밝힐 수 있게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명명덕의 사상을 담아낸 것이 新民이므로 民은 新의 목적어가 아니다. 民은 명덕이 발하게 하는 상대물이면서 동시에 明할 수 있게 하는 상대물이다. 따라서 新民은 ‘民으로 인하여 발한 나의 명덕을 民과 더불어 새롭게 함’의 뜻을 간직한 표현인 것이다. 명명덕과 新民은 두 개의 일이 아니고 하나의 일이 되는 것이다. 명명덕은 총론, 新民은 그 실제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신수身修: '身이 修하다' 修身이 된 상태. 物格, 知至, 意誠, 心正, 家齊, 國治, 天下平이 모두 이와 같은 형식의 글이다.

신愼: ‘삼가다’ (必愼其獨; 有國者不可以不愼; 君子先愼乎德).

신新: ‘새롭게 하다’ 新者革其舊之謂也. (新民; 苟日新日日新又日新; 作新民; 其命維新). 明(밝히다)의 다른 표현.

신信: ‘信義’ (與國人交止於信; 忠信以得之). →忠信

신臣: ‘신하’

신身: 身은 어느 경우이든지 自身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자신이라는 것은 마음을 핵심으로 한다. 따라서 自身은 나의 마음이다. 마음은 明德일 경우도 있고(修身; 自修), 心일 경우도 있으므로(身有所忿치則不得其正; 所藏乎身) 身 역시 이 경우에 따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이 외에는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자신 전체를 이른다(富潤屋; 德潤身; 치必逮夫身;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실失: ‘잃다’ (失衆卽失國; 不善則失之矣; 驕泰以失之).

심心: 마음을 뜻하는 말로서 가장 범위가 넓은 말. 正心의 心은 마음의 (本)體이고 修身의 身은 情으로서 마음의 (作)用이다. 태학의 경우 앞의 설명 외에는 대개 일상에서 통하는 마음으로 통한다. (正心; 心廣體반; 心不在焉; 心誠求之; 其心休休焉; 人之彦聖其心好之).→明德.

십十: ‘열’ (十目所視 十手所指其嚴乎).

악惡: ‘나쁜(것)’ (惡臭; 好而知其惡).

안安: ‘안정되다’ (能安).

암암巖巖: ‘우뚝 솟은’ (維石巖巖).

애긍哀矜: ‘불쌍히 여기다’

애哀: ‘불쌍히 여기다’ (哀矜).

애愛: ‘사랑하다’ (親愛; 唯仁人爲能愛人能惡人).

야也: 1)문장을 종결하는 말. (未之有也; 皆自明也; 如切如磋者道學也; 此以沒世不忘也; 聽訟吾猶人也; 此謂知之至也;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 故君子必愼其獨也; 孝者所以事君也 弟者所以事長也 慈者所以使衆也; 是以君子有혈矩之道也; 德者本也財者也;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此謂國不以利爲利以義爲利也). 2)부사를 강조. (必也使無訟乎-必也는 必).

약若: 1)가정하여 하는 말 머리에서 ‘~라(고 한다)면’ (若有一개臣). 2)‘마치 ~처럼 여기다[하다]’ (若己有之; 不시若自其口出).

양讓: ‘겸양심’ (興讓).

양養: ‘기르다’ (學養子).

어於: 1)‘~에[에서]’, ‘~에 대하여’ 영문법 소위 전치사. (欲明明德於天下者; 自天子以至於庶人; 於止; 爲人君止於仁; 誠於中形於外; 所惡於上毋以使下). 2)‘타동사+於+목적어’의 형식으로 ‘타동사+목적어’로 연결된 것보다 미묘한 언어감각을 가지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觀과 察이라는 동사이다. 觀於 察於 또는 察乎의 모양으로 타동사 노릇을 하는 것이 마치 서양어에서 제3격을 거느리는 동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영어에서도 동사에 전치사가 붙어서 타동사 노릇을 하는 게 많이 있다. (不察於鷄豚). 3)감탄사. →於(오)를 보라.

언성彦聖: 외적 아름다움과 내면의 총명함. 彦美士也 聖通明也. (人之彦聖其心好之).

언諺: ‘속담’ (諺有之曰).

언焉: ‘於(어)+之(지)’=焉(언) (心不在焉; 之其所親愛而벽焉;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엄嚴: ‘엄하다’ (十目所視 十手所指其嚴乎).

엄揜: ‘가리다’ (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

여기與其: ‘與其~寧-’의 형식으로 ‘~하기보다는 차라리 -’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

여민黎民: →려민黎民

여如: ‘~처럼 하다’, ‘~와 같다’, ‘不如’는 ‘~보다 못하다’, ‘~과 다르다’, ‘如~然’의 형식으로 ‘~인 것처럼 하다’, ‘如何’ ‘如之何’의 형식으로 ‘어찌’ ‘어떻게’ (不如鳥; 如切如磋; 如見其肺肝然; 其機如此; 如之何).

여與: 1)‘~와 더불어’ (與國人交止於信; 不與同中國). 2)‘與其~寧-’의 형식으로 ‘~하기 보다는 차라리 -하다’ (與其有聚斂之臣寧有盜臣).

여절여차如切如磋: 切磋 즉 골각 공예의 재료를 다듬는 節次에 格物致知의 연마를 비유한 것.

여지하如之何: ‘그것(之)을 어찌하리 ’ (亦無如之何矣).

여탁여마如琢如磨: 琢磨 즉 옥석 공예의 재료를 다듬는 공정에 正心修身의 공부를 비유한 것.

역亦: ‘역시’ (言悖而出者亦悖而入 貨悖而入者亦悖而出; 尙亦有利哉; 亦曰殆哉; 亦無如之何矣).

연然: 형용사에 붙어서 부사를 만든다. (厭然). ‘如~然’의 형식으로 ‘~인듯이(하다)’ (如見其肺肝然).

厭然: ‘허겁지겁’ 厭然消沮閉藏之貌. (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

엽葉: ‘잎(사귀)’ (其葉蓁蓁).

오惡: ‘싫어하다’ (惡惡臭; 惡而知其美者).

오於: 감탄사. ‘아!’ (於緝熙敬止; 於戱前王不忘).

오敖: ‘건방지다 여기다’ (敖惰).

오吾: ‘나(我)’ ‘聽訟吾猶人也’

오타敖惰: 오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피심이 아닌가 한다. 건방진 사람과 게으른 사람에 대하여 發하는 기피하는 마음이 오타가 아닌가 한다. 이 대문에 ‘기피심’으로 변역하기도 하였다. 잘 모르는 부분이다.

오호於戱: ‘嗚呼’와 同. (於戱 前王不忘).

옥屋: ‘집’ (富潤屋 德潤身).

왈曰: ‘이르다 말하다’

왕王: ‘천자’ ‘대국의 임금’ ※王은 유학을 이해하는 주요한 단어이다. 王者는 以德行仁하는 사람이고, 覇者는 以力假仁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王道와 覇道, 王天下와 覇天下의 구분이 생긴다. 이 구분은 태학의 이해와 직결된다.

외畏: ‘두려워하다’ (大畏民志; 畏敬).

외外: 1)‘겉’ (形於外). 2)‘도외시하다’ ‘가볍게 여기다’ (外本內末).

요순堯舜: 요임금과 순임금. (堯舜率天下以仁).

요樂: ‘좋아하다’ (好樂).→樂.

요요夭夭: ‘아리땁다’ 少好貌. (桃之夭夭).

욕欲: ‘~하고자 하다’ (欲明明德於天下者).

용用: ‘쓰다’, 소비(재) (用其極; 有財此有用; 用之者舒; 財用).

용容: ‘포용하다’ (其如有容焉; 寔能容之).

우양牛羊: ‘소와 염소’

우又: '또'

우憂: ‘격정하다’ (憂患).

우于: ‘於’ ‘乎’와 同. 1) ‘~에’ (止于丘隅; 儀監于殷). 2)『詩』에서 주격조사 구실, 또는 동사 앞에 붙어서 동사를 강조하는 구실, 또는 영어식의 관계형용사절 구실을 하는 것 같다. 之子于歸의 경우 ‘그녀가 시집가네’ 또는 ‘시집가는 그녀’라고 번역들 한다. 3)전치사 ‘~에’의 뜻을 지닌 동사, ‘~에 있다’ ‘~에서 하다’ 또는 2)의 구실 가운데서 동사앞에 붙어 동사를 강조하는 구실을 하는 것 같다. 惟命不于常의 경우 이 두 구실이 다 통한다. 之子于歸를 부정문으로 만들어 보자. ‘于’가 동사를 강조하는 구실을 할 경우는 之子不于歸가 된다. 惟命不于常과 같은 모양이다. 命이 不變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不于常의 ‘于’를 이런 구실로 이해하고 싶다.

우右: ‘오른쪽’

우환憂患; ‘걱정하다’

욱澳: 강이 굽이쳐 도는 곳.

운云: ‘이르다’

원遠: ‘멀다’ ‘멀리’ (雖不中不遠矣; 退而不能遠).

위違: ‘거스르다’違拂戾也.  (違之俾不通).

위謂: ‘言’과 同. ‘~은 -이다’, ‘~은 -을 뜻한다’,  ‘~란 뜻’ (此謂知本; 此之謂自謙; 此謂誠於中形於外故君子必愼其獨也. 新者革其舊之謂也). (所謂; 所謂誠其意者). 

위爲: 1)以와 함께, ‘以~爲-’, ‘~以爲-’이 형식으로 ‘~으로 -을 삼다’, ‘~을 -라 여기다’ (以修身爲本; 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 亡人無以爲寶 仁親以爲寶; 國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 2)‘~으로서’ 以와 같은 뜻. (爲人君止於仁). 3)‘행하다’, ‘만들다’, ‘다스리다’ ‘경영하다’ (爲不善; 爲之者疾用之者舒; 小人之使爲國家). 4)‘~됨됨이’ (其爲父子兄弟). 5)‘爲~(所)-’의 형식으로 ‘~에게 -당하다’ 타동사를 수동태로 만든다. (爲天下僇矣). 6)乃의 뜻. (唯仁人爲能愛人 能惡人).

위의威儀: 赫과 喧의 해석. 내면의 恂慄에 대하여 그것의 외모를 형용한 말. 소인이 범접하지 못하고(威), 본받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외모(儀)이다. 威可畏也 儀可象也.

유비군자有斐君子: ‘아름다운 군자’

유신維新: 其命維新의 약어로 革命과 동의어.

유猶: ‘~와 같다’ (聽訟吾猶人也).

유喩: ‘깨우치다’ ‘가르치다’ 喩曉也. (喩諸人).

유唯: ‘오직 ~라야’ (唯仁人).

유有: 1) ‘생기다’ (知止而后有定). 2)‘~(에)있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未之有也; 有所忿懥則不得其正; 故諺有之曰; 有諸己而後求諸人; 若有一개人). 3)‘소유하다’ '다스리다' '지키다' (有國者). 4)‘고용하다’ (與其有聚斂之臣寧有盜臣). 5)글자 수를 맞추기 위한 조사 또는 형용사 위에 놓여 형용사의 뜻을 돕는 말. (有斐君子).

유소有所: 직역하면 '~하는 바 있음'으로 없어야 할 상황에서 무엇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有所好樂'는 지금 여기 상황에서 好樂(호요)의 정이 일지 말아야 하는 데, 호요의 情이 발하는 것이며, 이 때 일어난 호요는 客情으로 마음에 탈이 난 증세이다. 心의 본체가 탈이 난 것을 有所의 病이라고 한다.

유惟: 1)문장 머리에 놓여 그 문장을 위엄있게 무게 있게 꾸며준다. (惟民所止; 惟命不于常). 2)‘오직’의 뜻을 겸하기도 한다. (惟善以爲寶).

유維: 惟와 통용한다. 1)우리말 조사 ‘을’ ‘이’에 해당하는 말로 주어와 술어, 술어와 목적어, 주어와 보어사이에 놓인다. (其命維新; 民惟邦本-『서경』「하서」‘오자지가’ ). 2)문장의 첫머리에 놓여 글자 수를 맞추기도 하고 글자의 소리가 지닌 뜻을 표하기도 한다. 소리가 지닌 뜻이라 함은 ‘위대성’이다. 문장을 거창하게, 무게 있게 꾸며주는 것 같다. (惟民所止; 維石巖巖; 惟命不于常).

윤尹: 세경(世卿:대를 이어하는 고위 벼슬)하던 사람 윤씨. 누구인지 모르겠다.

윤潤: ‘번드르르 하게 하다’ ‘빛나게 하다’ (富潤屋 德潤身).

은殷: 탕임금의 殷나라.

의儀: 1)禮의 생활 표현으로서, ‘법도’ ‘예의’ ‘절도’ ‘태도’ 2)사람의 외적 ‘용모’ ‘모습’ (其儀不특). 3)타인의 마음에 본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솟게 하는 1)과 2). (赫兮喧兮者威儀也). 4)‘선례’ ‘본보기’ (儀監于殷). ※1)과 3)은 善 일변으로 사용한다.

의宜: ‘~과의 관계를 잘 가지다’ 宜猶善也. (宜其家人; 宜兄宜弟).

의矣: 문장의 끝에 붙는 말. 형용사를 서술어로 하고 있는 문장에 붙는 경우가 많고(知所先後則近道矣;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如見其肺肝然則何益矣; 天下鮮矣; 雖不中不遠矣; 財恒足矣), 미래의 단정을 나타내는 문장 즉 ‘이[하]리라’의 토가 붙을 문장에 쓰이는 것으로 생각한다(辟則爲天下륙矣; 不善則失之矣; 必自小人矣; 亦無如之何矣).

의義: 여기의 본문을 볼때 仁과 義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仁이 상위차원이고 義는 하위 차원이 아닌가 한다. 윗사람이 행하는 義는 仁에 뿌리를 두고 있고, 아랫사람이 행하는 義는 아직 仁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밴 것이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위에서 인을 좋아하는데도 아래에도 의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직 없다’이다. 인을 上에 義를 下에 배당한듯하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義는 正義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의意:→誠意.

의의猗猗: ‘아름답다’ 猗猗美盛貌.

이爾: ‘너’ ‘당신’ (民具爾瞻).

이易: ‘쉽다’ (峻命不易).

이以: 1)‘(~에서부터)주욱’ (自天子以至於庶人). 2)‘(~을)가지고’, ‘~으로써’ 수단을 타나태는 전치사, 영어의 관계대명사(앞의 문장 또는 절을 다 대신한다). (以修身爲本; 孝者所以事君也; 堯舜率天下以仁; 毋以使下; 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 以能保我子孫黎民; 人之有技媢疾以惡之; 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3)可에 붙어 可以, 不可以의 형태로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可以人而不如鳥乎). 4)‘때문에’ (此以沒世不忘也; 是以).

이而: 1)상하전후와 함께 쓰여 구분의 경계를 선명하게 한다. (而后). 2)‘이면서 하면서’, ‘~하며 하고 이며 이고’, ‘~하나 이나 하지만 이지만’, ‘~하니 이니’, ‘~하면 이면’, ‘~하게 이게’ 등의 의미를 가지고 節과 節을 연결한다. (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 賢其賢而親其親; 揜其不善而著其善; 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 好而知其惡; 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而民不從; 所藏乎身不恕而能喩諸人者; 上老老而民興孝; 言悖而出者亦悖而入; 見賢而不能擧;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3)‘~으로서’ (可以人而不如鳥乎). 4)술어와 술어 아닌 것을 구분하여 문장을 두드러지게 한다. (人之彦聖而違之俾不通; 之其所親愛而辟焉).

이후而后: 이후(以後)와 같다. ‘~한 다음에’

익益: ‘이롭다’ (何益矣).

인人: ‘사람’, ‘남(타인)’ (人君; 國人; 聽訟吾猶人也).

인仁: 1)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에 대하여 지녀야 할 情(사랑의 마음). (爲人君止於仁). 2)사람의 意로서 天心이라고 할 수 있을 誠과 합치한 마음 또는 그러한 경지. (一家仁一國興仁; 率天下以仁; 仁人放流之; 唯仁人爲能愛人能惡人;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3)‘사랑하다’ 仁愛也. (仁親以爲寶).

일시壹是: ‘한결같이’ (壹是皆以修身爲本).

일一: ‘하나(의)’

일日: ‘하루’, ‘날마다’ (日新日日新).

입入: ‘들어오다’ (言悖而出者亦悖而入 貨悖而入者亦悖而出).

자손子孫: ‘자손’

자수自修: 正心修身.

자왈子曰: ‘공자 말씀하시기를’

자自: 1)‘(~에서)부터(유래하다)’ (自天子以至於庶人; 自其口出; 必自小人矣). 2)‘스스로’, ‘자신’ (皆自明也; 自修也; 自欺也; 自謙).

자子: 1)‘아들’, ‘자손’ (父子兄弟; 子孫黎民). 2) ‘여자’ (之子于歸).

자者: 동사를, ‘~하는 사람’, ‘~하는 것’ 등의 의미를 지닌 명사절로 만든다. (欲治其國者先齊其家;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如切如磋者道學也; 無情者; 所謂誠其意者; 仁者; 不仁者).

자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明德). (慈者所以使衆也).

작作: 1)‘진작고무하다’ 鼓之舞之之謂作. (作新民). 2)‘爲’ (一國作亂 <爲+형용사=형용사>).

장藏: ‘간직하다’ (所藏乎身).

장長: 1)‘어른’ (弟者所以事長也; 上長長而民興弟). 2)‘(어른을) 공경하다’ (上長長而民興弟). 3)'~의[에서] 長이다' '~의[에서] 우두머리가 되다' (長國家)

재在: ‘~에 있다’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재財: ‘財物(재물)’ (有土此有財; 德者本也 財者末也; 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生財有大道;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府庫財; 財用).

재哉: 미래의 확신 추즉 희망을 나타내는 문장의 종결사. ‘~일 것인저’의 토가 붙는다. (尙亦有利哉).

재菑: ‘재해’ ‘재앙’ 災(재). (菑必逮夫身).

재해菑害: ‘菑와 害’ 菑는 하늘이 내리는 재앙, 害는 스스로 만든 화(菑由天降 害自人作). (菑害並至).

쟁爭: ‘다투게 하다’ (爭民施奪).

저著: ‘드러내다’ (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

저諸: ‘之+於’의 뜻과 소리. (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能喩諸人者; 迸諸四夷).

적자赤子: ‘갓난아기’ (保赤子).

전前: ‘앞’, ‘앞사람’ (前王不忘; 所惡於前毋以先後).

절節: ‘깎아지른듯하다’ 截然高大貌(깎아지른 듯 위엄찬 모습). 節은 截로서 絶壁의 絶인가 보다. (節彼南山).

절切: ‘자르다’→如切如磋

정심正心: 心(體)에서 객정을 제거하여, 심(마음)을 명경지수의 상태로 만드는 일.→修身.

정靜: ‘안정되다’ (能靜).

정情: ‘참(眞)’ 虛僞와 實情이 서로 반대 말이다. 實은 虛와 짝하고 情은 僞와 짝한다.↔僞. 情實也. (無情者). ※情은 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어이다. 情은 마음이다. 일상에서 쓰는 마음이 情이다. 마음을 물(水)에 비유하면 물결에 해당하는 것이 情이다. 마음은 心의 파동이다. 明明德의 明德, 誠意의 意, 修身의 身, 孝 弟 慈, 七情(칠정), 四端, 忠恕 등이 다 情이다. 마음에 發하는 마음은 다 情이다.

정正: 1)‘(마음을)명경지수처럼 만들다’ (正其心; 正心). 2)과불급이 없는 마음의 상태. (不得其正). 3)‘바로하다’, ‘다스리다’ (正是四國).

정定: 1)‘결정’, ‘一定’ (有定). 2) ‘安定하다’ (一人定國).

제가齊家: →治國

제전帝典: 『서경』「우서」의 글 堯典.

제弟: 1)‘형제간의 愛情’ ‘윗사람에 대한 공경심’ (弟者所以事長也; 上長長而民興弟). 2)‘형제’ (宜兄宜弟; 父子兄弟).

제帝: ‘천자’ (帝典).

제齊: 治와 동의어이다.

조鳥: ‘새’

족足: 1)‘~할만하다’ (足法). 2)‘(풍)족하다’ (財恒足矣).

종시終始: ‘始終’

종從: ‘따르다’ (民從之; 民不從; 毋以從前).

종終: 1)‘끝내’ (終不可諠兮). 2)‘잘 마무리하다’ ‘끝까지 잘 되다’ (其事不終者也).

좌左: ‘왼쪽’

주周: 문왕을 시조로 하는 나라.

준峻: ‘大’ (克明峻德; 峻命不易).

중中: 1)‘속’ ‘마음’ (誠於中形於外). 2)‘적중하다’ ‘꼭들어 맞다’ (雖不中不遠矣). 3)‘~의 가운데 자리하다’ ‘~의 중심에 자리하다’ (不與同中國).

중衆: 1)‘인민’ (慈者所以使衆也; 得衆卽得國). 2)‘많다’ (生之者衆 食之者寡).

즉卽: ‘~면 바로-’ (得衆卽得國 失衆卽失國).

즉則: ‘~則’의 형식으로 ‘~면’ (如見其肺肝然則何益矣; 有所忿懥則不得其正).

즙緝: ‘잇다’ 緝繼續也. (於緝熙敬止).

증자曾子: 공자의 제자. 공문의 도통전수자로 알려져 있으며 주자는 증자를 태학에 연관을 짓고 있다. 태학의 經이, 공자말씀을 증자가 기술한 것이라고 보고, 나마지 傳 열 장은 증자 문인의 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지선至善: 사리로 보아 지극히 당연한 경지(事理當然之極). ‘최상의 善’이라는 뜻으로 家 國 천하라는 지금 여기의 상황을 전제로 한다. 고정된 절대선이 아니다. 家 國 天下라는 시공의 무대와 오륜이라는 인륜의 상황에서 뽑아올린 최상선이므로 家 國 天下의 상황, 시공의 상황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로서, 어린 시절의 至善이 있고, 성인으로서 성인시절의 至善이 있다. 이러한 至善은 중용과 동의어이다. 이러한 至善이 가능한 근거는 역시 性善이다. 性善의 善은 절대선으로 至善의 가능근거이다.

지只: ???樂只君子

지指: ‘가리키다’ (十目所視 十手所指其嚴乎).

지志: ‘뜻(意)’ (大畏民志).

지止: 1)‘머물다’. 이 말에는 자연, 무심, 무위의 뜻이 있다. 즉 절로의 뜻이 스며 있다. 新民을 하되 그것이 작위, 인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절로절로 하는 것을 말한다. 爲人父止於慈는 아버지로서 慈에 머물렀다는 말인데, 이 말은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명덕인 慈를 밝히는 일에 작위가 없이 무위자연으로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止者必至於是而不遷之意. (止於至善; 惟民所止; 止于丘隅; 於止知其所止; 穆穆文王於緝熙敬止; 爲人父止於慈). 2)잡다(執). 3)‘지선의 소재’ 止者所當止之地卽至善之所在也. (知止而后有定).

지知: 1)‘알다’, (知止; 知所先後; 知其所止; 知本; 食而不知其味). 2)‘지식’, ‘지혜’ 知猶識也. (致知在格物).

지至: 1)‘이르다’ (物格而后知至; 自天子以至於庶人; 無所不至). 2)‘지극한’, ‘지극하다’. (至善)

지之: 1)동격을 나타내는 조사로 우리말 ‘~의 -’, 또는 ‘~(이)라는 -’의 뜻. ‘태학의 도’는, ‘태학의 도’ 또는 ‘태학이란 도’의 뜻을 품고 있다(大學之道; 天之明命 ; 絜矩之道), 2)영문법에서 말하는 문장의 節에서 節의 주어를 나타내거나 하며 시간을 나타내는 조사의 뜻을 겸하고 있다고 본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民之不能忘也 인민들이 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此謂知之至也; 人之視己; 挑之夭夭; 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 殷之未喪師; 人之有技若己有之 3)목적격 대명사, ‘그것을’(未之有也; 故諺有之曰; 能敎人者無之; 民法之 인민들이 그것을 본받는다; 民從之; 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 道善則得之不善則失之矣; 寔能容之; 心誠求之; 唯仁人放流之; 生之者衆 食之者寡 爲之者疾 用之者舒; 雖有善者亦無如之何矣. 4) 소유격을 나타내는 조사, ‘~의’. (湯之盤銘; 其子之惡; 民之父母). 5)此之謂自謙, 此之謂絜矩之道, 此之謂民之父母와 같은 형식에서의 之는 주격조사나 목적격조사로 번역한다. ‘이것이 바로 ~이다’, ‘이것이 바로 ~라고 하는 그것이다’, ‘이것을 일러 바로 ~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라고 부른다’ 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此는 설명의 말이며, 謂 다음에 놓이는 말은 此에 포함된 내용을 지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말로서,  ‘此之謂~’은 此가 품고 있는 것들을 요약하면 바로 서로 잘 알고 있는 ~이란 의미를 지닌다. 6)영문법 상의 전치사, ‘~에(대하여)’. ‘於(~에)’ 또는 ‘於之(그것, 거기에)’와 같은 뜻. (人之其所親愛而辟焉). 7)‘이 그 저’ (之子于歸). 8)동사 뒤에 붙어 형용사절을 만드는 무엇. (伐氷之家; 聚斂之臣).

진서秦誓: 『서경』「주서」의 글이름(편명).

진盡: ‘다하다’ (不得盡其辭).

진진蓁蓁: ‘(잎이)무성하다’ 美盛貌. (其葉蓁蓁).

질疾: ‘빠르다’ (爲之者疾).

차磋: ‘깍고 갈아 광내다’→如切如磋

차此: 1)이그저의 ‘이’ (此以沒世不忘也; 此謂知本; 此之謂自謙). 2)‘~면’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찰察: ‘보살피다’ ‘~에 마음을 두다’ ‘~에 눈길을 주다’ (不察於鷄豚).

천리千里: 방기의 규모 사방 천리.

천오賤惡: ‘미워하다’

천자天子: 제후를 통하여 천하를 통치하는 중심인물. 천자와 단군은 같은 音(소리)이다.

천賤: ‘미워하다’ ‘얕보다’ (賤惡).

천하天下: 광의로 말하면 ‘세상’, 협으로 말하면 ‘천자를 구심점으로 한 통치 체제(가 미치는 한 단위 구역. 구체적으로는 중국 천하) ’. (平天下; 天下鮮矣; 率天下; 天下륙矣).

첨瞻: ‘바라보다’ (瞻彼淇澳; 民具爾瞻).

청송聽訟: ‘재판하다’

청聽: ‘듣다’ (聽訟; 聽而不聞).

체體: ‘몸’ (心廣體胖).

체逮: ‘미치다(及)’ (菑必逮夫身).

초서楚書: 『國語』의 「楚語(초어)」.『國語』는 『春秋』를 해설한 左氏(이름은 丘明구명)의 책. 춘추시대의 여러 나라, 周 魯 齊 秦 鄭 楚 越의 순으로 각국의 역사 이야기를 기록. 여기의「楚語」는 楚史부분. 左丘明이 魯나라 사람이고, 『춘추전』이 魯의 역사를, 『국어』는 魯 이외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하였으므로, 『춘추전』을 內傳, 『國語』를 外傳이라고 부른다. 『國語』를 「春秋國語」라고도 부른다.

초楚: 국명. ‘초나라’

축畜: ‘기르다’ (畜馬乘).

출出: ‘벗어나다’ (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충신忠信: 마음의 진실성을 총론(범연히 말)하면 明德은 忠(德)이며(내면의 진실성),  明德의 실제에 있어서 그 明德이 物理(道理)에 합치하면 그 明德은 信(德)이다. 發己自盡爲忠 循物無違謂信.

취臭: ‘냄새’ (惡臭).

취聚: ‘모이다’ ‘모으다’ (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聚斂之臣).

치국治國: ‘나라를 다스린다’고 직역한다면, 이는 治國의 껍데기이거나 패자들의 治國을 표현한 것이지 태학의 治國이 아니다. 태학의 治國이라면 國이 목적어가 아니다. 國은 治의 대상이 아니라 治를 가능케 하는 무대이다. 治의 목적어는 明德이다. 國이라는 무대상황에서 발하는 나의 明德을 治하는 것이 治國이다. 治國은 修身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修身으로 治國을 표현하면 國을 무대로 하는 修身이 治國이다. 齊家와 平天下의 경우도 역시 같다. 이러한 까닭으로 齊家, 治國, 平天下를 번역하지 않고 그냥 쓴다. 齊家, 治國, 平天下라고 쓰고, 그것이 각기 家 國 天下를 무대로 修身하는 것이라고 알면 된다.

치지致知: ‘지식, 앎을 이루다’  대학에서 知의 영역으로서 수신의 行과 함께 대학의 두 영역을 이룬다. 대학에서 知의 영역을 확보한 데 의미가 있다. 치지 자체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다만 致에 '철저히'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치致: ‘이루다’ 至(이르다, 다다르다)의 타동사이다. 致推極也.

치治: 1)‘다스리다’ (治國). 2)‘주어+서술어’ 형식으로 ‘잘다스려지는 상태’ ‘잘 다스려지다’ (國治而后天下平; 末治).

치懥: ‘화내다’ (忿懥).

친애親愛: ‘사랑하다’

친親: 1)친애하다. 2)친애하는 것 (君子賢其賢而親其親; 之其所親愛而벽焉). 3)‘부모’ (仁親以爲寶).

타惰: ‘게으르다 여기다’ (敖惰).

타他: ‘어떤 다른’ ‘딴’ (無他技).

탁琢: ‘정으로 쪼다’→如琢如磨

탈奪: ‘빼앗다’ (爭民施奪).

탐貪: ‘탐욕스럽다’ (一人貪戾).

탕湯: 인명. 殷의 시조.

태갑太甲: 사람의 이름이면서『서경』「상서」의 글이름.

태殆: ‘위태하다’ ‘위험하다’ 殆危也. (亦曰殆哉).

태학大學: 『태학』이라고 표현하면 책으로서의 태학.「태학」으로 표현하면 『예기』의 편명으로서의 태학. 아무 표시 없이 쓰면 학문의 이름, 학교의 이름이다. 본문 태학지도의 태학은 학문(의 이름)이다. 『태학』은 유학의 규모와 내용을 한눈에 보고 찾을 수 있는 유학의 지도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태학의 목표는 至善의 추구이다. 이 목표를 위한 를 구체적 일은 明明德이다. 明明德은 마음을 밝힌다는 뜻이다. 마음을 밝힌다는 것은 구체성이 결여된 관념적인 표현이다. 至善을 추구하는 일을 범연히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이 범연한 표현 明明德은 다시 구체화되어야 한다. 明明德은 格物致知, 正心修身으로 구체화된다. 좀 구체화, 세분화된 것이라 하여 이들을 조목(條目)이라고 부른다. 조목은 나무의 가지와 그물눈을 가지고 한 비유이다. 이제는 실제화되어야 한다. 明明德은 新民으로 실제화된다. 明德은 더불 상대가 있어야 發하고 밝힐 수 있다. 民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말이다. 따라서 民은 新의 목적어가 아니다. 목적어는 역시 明德이다. 新民은 民과 더불어 나의 明德을 새롭게 하는 일, 밝히는 공부의 명칭이다. 民은 오륜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 이 오륜의 民과 더불므로써 나의 마음에 그들을 향한 明德이 發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 明德을 밝혀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新民은 이제 구체화 과정을 밟는다. 齊家 治國 平天下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齊家 治國 平天下는 格物 致知와 正心 修身이 실제화된 명칭이다. 格物致知와 正心修身은 修身으로 요약한다. 修身은 한 그루 나무이다. 나무라면 허공에 심을 수 없고 이 땅 어디엔가 심어야 한다. 심겨 자라는 곳이 家 國 天下일 경우 修身은 각기 齊家 治國 平天下라고 부른다. 같은 나무지만 가로에 심으면 가로수라고 하고, 정원에 심으면 정원수라고 하는 것이나 같다.  齊家는 家를 무대로 하는 修身이며, 治國은 國을 무대로 하는 修身이며, 平天下는 천하를 무대로 하는 修身이다.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修身於家國天下하는 것이 각기 齊家 治國 平天下이다. 明明德은 新民으로 실제화됨으로써 허공에 걸려 있지 않게 되고, 新民은 明明德을 내용으로 함으로써 覇者들의 치인술과 다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이념과 그 이념이 구현된 일, 그리고 그 일의 구체화와 실제화 작업이 끝났다. 이제는 이러한 모양의 學을 경영, 운전할 무엇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誠意이다. 誠意는 태학을 돌아가게 하는 드라이버이다. 誠意가 아니면 태학은 돌아가지 않는다. 意 한자만 쓰면 관념이 된다. 意는 반드시 내용을 품고 있어야 한다. 즉, ‘~에 대한 意’라야 살아 있는 意가 된다. 誠意의 意는 태학의 意이고, 明明德하고자 하는 意이고, 格物致知 正心修身하고자 하는 意이다. 意에 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면에서 태학은 誠意 한 말로 요약한다.

토土: ‘토지’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통通: ‘이루다(達)’ (違之俾不通).

퇴退: ‘물리치다’ (見不善而不能退).

특忒: ‘바르지 않다’ ‘어긋나다’ 忒差也. (其儀不忒).

패悖: ‘어긋나다’ 悖逆也. (言悖而出者亦悖而入 貨悖而入者亦悖而出).

평천하平天下: 천하를 무대로 하여 格物致知하고 正心修身하는 공부의 명칭. 천하를 무대로 하여 誠意하는 공부의 명칭. 천하를 무대로 하여 明明德하는 공부의 명칭. →治國.

폐간肺肝: 폐와 간이니, ‘마음 속’의 비유. (如見其肺肝然).

포暴: ‘포악함’

피彼: 이그저의 ‘저’ (瞻彼淇澳; 節彼南山).

필必: ‘반드시’ (必也; 必愼其獨).

하何: ‘어찌’ (何益矣; 如之何).

하下: 전후좌우상하의 ‘下’ (毋以使下; 天下; 上好仁而下不好義者).

학學: ‘배우다’ (學養子).

한거閒居: 홀로 있는 장소(시간). 閒居獨處也.

한僩: 내면의 꿋꿋함. 僩武毅之貌.

항恒: ‘늘’ ‘늘상’ ‘항상’ (財恒足矣).

혁赫: ‘빛나다’ 赫喧宣著盛大之貌.

혁혁赫赫: ‘빛나다’

현賢: 1)‘훌륭한 점’, ‘훌륭함’, 2)‘훌륭하게 여기다’ (君子賢其賢而親其親). 3)‘현인’ (見賢而不能擧).

혈구絜矩: 絜은 줄자로 원둘레 등을 재거나 그리는 도구이고, 矩는 曲尺(곡척)으로 직각을 재거나 만드는 도구이다. 여기서 ‘헤아리다’, ‘모범’ ‘기준’ ‘법’ ‘道’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絜矩의 道’는 마음을 재는 법으로 쓰였다. 絜矩 즉 마음을 재는 道이다. 絜度也 矩所以爲方也.

형제兄弟: ‘형제’

형形: ‘(겉으로)드러나다’ (誠於中形於外).

兮혜: 詩歌文의 끝이나 句(節)의 끝에 붙어서 글자수도 맞추고 반복의 리듬도 맞추고 감정을 고조한다. (瑟兮僩兮 赫兮喧兮).

호요好樂: ‘좋아하다’

호好: 1)‘좋아하다’, 2)‘좋은’ (好好色).

호乎: 문장의 종결사로, 1)의문문(또는 의문문 형식의 문)을 만든다. (可以人而不如鳥乎; 其嚴乎).  2)미래의 당위를 나타낸다. ‘~할 것인저’ ‘~해야 할 것이다’ (必也使無訟乎). ‘其~乎’의 문장 형식으로 미래의 단정 추측을 나타낸다. (其嚴乎). 3)전치사로 ‘於’와 같은 뜻. (所藏乎身; 君子先愼乎德).

호戱: 감탄사 ‘呼’ (於戱 前王不忘. 於戱는 ‘오호’).

화貨: ‘돈’ (言悖而出者亦悖而入 貨悖而入者亦悖而出).

환患: ‘걱정하다’ (憂患).

황조黃鳥: 꾀꼬리.

효孝: ‘부모로 인하여 발하는 明德’, ‘부모를 사랑하다’

후厚: ‘두터이 하다’

후後: 1)‘뒤의 것(사람, 시대, 제도 등)’ (毋以先後; 所惡於後). 2)‘뒤로 하다’ (所先後).

훤喧: ‘외모의 성대함’ 赫喧宣著盛大之貌.

훤諠: ‘잊다’ (終不可諠兮).

휴휴休休: ‘아름답다’ 其心休休焉

휼恤: ‘불쌍히여기다’ (上恤孤).

흥興: ‘일으키다’ ‘興起하다’ 有所感發而興起也. (興仁; 興讓).

희熙: ‘광명’ 熙光明也. (於緝熙敬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