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론 맛보기

 

 

 

상이 차려지지 않는 『대학』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저 말을 줄기로 하여 전습의 내용을 분류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저 말에 따라 분류되지 않을 내용이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格物致知, 이것은 正心修身, 이것은 誠意 등등, 대학을 읽고 나서 다른 경서를 보면 이렇게 확연히 구분이 간다'는 주자 말씀도 힘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저 말을 틀로 삼아 거기에 얹으려고 하니 어찌 된 일인지 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輯要(집요). 알맹이들을 모았다는 뜻이다. 『聖學輯要(성학집요)』가 있다. 율곡선생이 선조에게 지어 올렸다는 책이라고 한다. 성학이란, 공맹의 학이다. 그러므로 이를 집요하였다면 반드시 대학의 틀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은 대학의 틀에 성학을 얹지 않았다.

왜 일까.

정선 구절리에서 강릉 쪽으로 더 가는 어느 골에 율곡의 신을 모시는 노인 한 분이 계신다고 한다. 이 노인을 찾아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 나기도 한다. '왜?'에 대한 답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대학은 상이 차려지지 않는다. 머리 속에서는 가능한 것 같은데 실제에서는 적용이 안된다. 대학이라는 말과 이론은 있는데 그것의 실제는 어디에도 없다. 설계도는 있는데 시공한 사람은 아직 없다.

왜 그런 것인가?

대학이 유학의 개론서라고 하기도 하고 성학을 얹을 間架(간가. 책꽂이)라고 하는데 왜 얹어지지 않는 것인가. 왜 설치가 안되는 것인가? 설치 안되는 이유는 당연하지 않은가! 오류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버그를 찾아 제거하여 설치 가능한 운영프로그램을 돌려 놓은 것이 내가 소개하는 대학이다.

출발은 '修身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이다.

 

  태학 맛보기


 

- 修身은 情을 다듬는 일

이것이 修身을 정의하는 기초이다. 修의 목적어가 情이라는 뜻이다. 情이 修身의 재료가 된다. 재료가 情임을 밝히고 거기에다가 修의 목표를 더하게 되면 완전한 修身의 정의가 이루어진다. 목표는 中(중)이다. 情無不中(정무불중). 情이 과불급이 없게 함. 이것이 修身의 정의이다.

情이란 무엇인가? 희노애락애오욕, 사단칠정, 孝등의 마음이 모두 情이다. 일상에서 말하는 마음이 다 情이다. 이런 것들은 마음의 파동(波動. 물결)이다. 마음의 물결인 것이다. 이 물결은 마음의 수면에 외物이 퐁당함으로써 일어난다. 마음이 외부의 物에 닿아서 發(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情을 얻어 그것을 修하고져 한다면 반드시 내 마음에 물결을 일으킬 상대 物이 있어야 한다.

 

物 중의 物은 사람이다.

사람은 君臣 父子 夫婦 長幼 朋友 등 오륜 관계의 사람들로 구체화된다.

이들이 바로 신민의 民이다. 그러니 이 物, 이 民이 아니면 修身이 불가한 것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修身의 이러함을, 조목을 빌려 말을 지으면,

格物修身(격물수신), 또는

修身在格物(수신재격물. 修身은 格物함으로써 가능함)이다.

이것은 致知(치지)의 경우도 같다.

致知도 在格物(경1장), 즉 格物致知이다.

설계도 상에 나타나는 修身의 이러한 내용(修身은 格物修身)은 新民이라는 건축물로 나타난다.

 

- 新民의 民이 의미하는 것

民에 담긴 뜻은,

明德, 즉 情이

내 마음에 發(動)하게 하고,

발한 明德을 더불어 밝힐 수 있게 하는

物이라는 것이다.

 

格物의 구체적인 物로서 民은 格物의 뜻을 고스란히 받는다.

民으로 인하여

나의 마음에 明德이 발하고

(物外無心물외무심. 物 없으면 닦을 마음도 없음),

民과 더불어 발하는 明德을 밝힌다는 것

(與民明之여민명지, 民 즉 物이 아니면 밝힐 수도 없음),

 

이것이 新民의 民이 품고 있는 뜻이다.

그러므로

新民은, 「民을 새롭게 하다」로 이해하면 안된다.

新明德與民. '民과 더불어 明德을 새롭게 함'이다.

명덕이라는 情은 사실 자기 자신(自身)이다.

그러므로

新民은 '자신을 새롭게 함', 즉 自新與民(자신여민)이다.

民은 새롭게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命이라는 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民과 더불어

그로 인하여 발하는 나의 마음 明德, 즉 자기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은 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은 在我者(재아자. 내게 달린 것)이며 在內者(재내자.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밝힐 民은 君臣 父子 夫婦 長幼 朋友 등 오륜 관계의 사람들이다. 태학은 이들과 더불어 明德(자신)을 새롭게 하는 학문인 것이다.

 

- 意, 齊家 治國 平天下의 주체

誠意는 齊家 治國 平天下의 경영자적, 주체적 조목이다. 강령 조목이 意에 걸려 있지 않은 것이 없다. 意가 아니면 대학은 굴러가지를 않는다. 학자들의 표현을 빌면 意는 行情者(행정자)이다. 情을 운전하는  놈이다. 情을 경영하는 物, 드라이버이다. 경1장 제4절은 行情者 意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경1장 제4절

 

古之

옛날

①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천하에서 明德을 밝히고자 하면

먼저 治國하고

②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治國하고자 하면

먼저 齊家하고

③欲齊其家者

先修其身

齊家하고자 하면

먼저 修身하고

④欲修其身者

先正其心

修身하고자 하면

먼저 正心하고

⑤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正心하고자 하면

먼저 誠意하고

⑥欲誠其意者

先致其知致知在格物

誠意하고자 하면

먼저 致知하였나니 致知는 格物에 있다

 

欲은 意欲으로서 意이다. 대학의 조목들이 欲에 모두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欲을 당기면 태학 전체가 달려온다. 이 欲을 誠하게 하는 것이 誠意이다. 그러므로, 誠意는 태학에 있어서 천자의 조목이며 동시에 태학 전체이다.

이 때문에,

선인들은 대학을 성의일 뿐이라고 이해하였는데 바른 이해라고 본다. 주체적 관점 경영자적 관점 등에서 보면 대한은 성의일 뿐임이 틀림 없다.

 

 태학 요리하기


 

원론 : 명명덕/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실제 : 신민/제가 치국 평천하

이념 : 지어지선

운영주체 : 성의

 

 

아래의 표는 두 겹으로 된 그림이다.

커서를 표위에 올려 놓으면 밑에 있는 그림이 보인다.

이렇게 하여 밑그림과 위의 그림 내용은 이름이 다를 뿐 하나임을 보이려 한다.

(커서를 올려놓기만 하고 누르지는 마시라)

3강령 8조목을 원론, 실제, 이념, 운영 등으로 분류한 설명이다.

 

- 원론에서

   1.조목으로 : 태학은 格物致知하고 正心修身하는 것

   2.강령으로 : 태학은 明明德하는 것

 

- 실제에서

    1.조목으로 : 태학은 齊家 治國 平天下하는 것

    2.강령으로 : 태학은 新民하는 것

- 운영자로

    태학은 誠意하는 것

- 목표(이념으)로

    태학은 止於至善하는 것

- 원론을 가지고 실제 표현하기

   1.조목에서 : 齊家 治國 平天下는 家國天下로 인하여 格物致知, 正心修身                      하는  것

   2.강령에서 : 新民은 民과 더불어 明明德하는 것

- 실제를 가지고 원론 표현하기

   1.조목에서 : 格物致知와 正心修身은 齊家 治國 平天下의 내용

   2.강령에서 : 明明德은 新民의 내용

- 誠意를 가지고 실제 표현하기

   1.齊家 治國 平天下는 家 國 天下의 意를 誠하게 하는 것

   2.新民은 오륜의 意를 誠하게 하는 것

- 誠意로 이론 표현하기

  1. 格物致知와 正心修身은 知와 行에 대한 意를 誠하게 하는 것

  2. 明明德은 明德에 대한 意를 誠하게 하는 것

- 강령으로 止於至善 표현하기

   止於至善은 明德이 明, 明德이 與民新한 경지

 

- 조목으로 止於至善 표현하기

  止於至善은 物格知至와 心正身修의 경지

- 誠意로 止於至善 표현하기

   止於至善은 意誠의 경지

 

하나의 태학을 여러 모양으로 요리할 수 있다.

칸마다 하나의 태학을 이렇게 저렇게 정의한 것이다.

어떻게 차리든 위의 것들은 다 대학의 한 상 차림이다.

 

태학의 설계 공식


 

위 사진의 조목마다 연결 문서를 걸어 놓았다.

눌러서 보시라.

수신 정심 치지 격물 성의 등의 순서로 읽으면 부담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