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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실제 강령

 

명명덕은 自明(스스로를 밝힘)이다.

新은 明의 또다른 구체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自明은 自新(스스로를 새롭게 함)이다.

 

民은 物 가운데 物로서 格物의 物이다.

自新 역시 民이라는 物에 格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新民이란 표현에서

民은

自新에 格物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니,

與民(여민. 民과 더불어)이다.

 

그러므로

新民은

自新與民(자신여민. 민과 더불어 스스로를 새롭게 함)이다.

治人이 아니다.

 

 

 원론

운영

실제

明明德

格物 致知

誠意

齊家 治國

平天下

新民

正心 修身

止於至善

이념

 

1. 新民은 格物明明德(격물명명덕)이다

新民은 명명덕(마음을 밝힘)이라는 원론적 표현에 格物의 옷을 입혀 튀겨낸 명명덕의 또다른 명칭이다. 格物의 옷을 입기 전에는 明明德이라 부르고, 格物의 옷을 입혀 먹을 수 있도록 튀겨내면 新民이다.

明明德에 格物의 옷을 입히게 되면, 밝힐 明德이 내 마음에 유래한 데(어디서)가 명확히 드러나고, 밝힐 방법이 또한 분명해진다. 저 物 때문에 내 마음에 明德이 發하고, 저 物과 더불어 발한 明德을 밝힐 수 있다. 저 物이 없으면 밝힐 明德도 없고, 저 物와 더불지 않으면 밝힐 수가 없다. 저 物이란 내가 밝힐 무엇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밝힐 수 있게 해주는 무엇이다. 저 物은 내가 새롭게 할 무엇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해 줄 物이다.

物 중의 物은 사람(人民)이다.  명명덕에 格物의 옷을 힘혀 튀겨낸 것이 新民이라면, 新은 명명덕으로서 自明, 自新이고, 民이 格物의 옷이다. 民에 부여한 格物의 의미는 與民(여민. 민과 더불어)이다. 格民의 속내용은 與民이 되는 것으로 格은 與로 구체화되었다. 따라서 新民은 自新與民(民과 더불어 스스로를 새롭게 함)이다. 이 때문에 新民을 격물명명덕(명명덕에 격물의 의미를 더한 것)이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다.    

 

2. 新民은 治人이 아니다

대학을 修己治人(수기치인)으로 요약하는 것이 이제까지 통용하고 있다. 修己는 명명덕을 해석한 것이고 治人은 新民을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新民은 治人이 아니다. 위에서 살핀 것 그대로 新民은 自新與民으로서 修己일 뿐이다. 그것이 다른 사상체계에서 말하는 수양과 다른 것은 格物(의 옷을 입힌) 수양이라는 것이다. 대학을 수기치인으로 요약하는 한 대학의 이해는 요원다.

3. 新民은 親民(친민)이 아니다

고문대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新民을 버리고 親民(친민)을 고집한다. 新民을, 親民(친민)으로 알아들으면, 治人으로 알아듣는 것 이상으로 유학을 왜곡하게 된다. 親民(친민)으로 이해한다면 유학이라는 것, 대학이란 것은 이제까지 있어왔던 여타 박애사상의 아류일 뿐이다. 親民(친민)으로 읽는 사람의 대표자는 아마 왕양명일 것이다. 왕양명의 행적을 통해서 親(친)의 의미를 새겨 보자.

親民(친민)으로 이해하면 인민을 친애하는 것이다. 친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림을 그려 보자. 왕양명은 살아 생전, 민란을 토벌한 장수이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 정부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민의 해방투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진압 과정에서 서로 많이 다쳤겠지만 소위 반란을 일으킨 인민대중의 피해가 더 컸으리라는 것은 안보고도 알만하다. 親民(친민) 사상을 가진 상황에서 반란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까.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이 친민일까. 무력 진압이 옳으냐 그르냐를 지금 말하고 있지 않다. 무력으로 진압할 수 뿐이 없는 상황에서, 아니면 그저 무력진압이 친민과 어울리는지, 그것이 친민인지, 親民(친민)의 그림을 실제로 그려 보자는 것이다. 친민은 모호한 관념이다.

왕양명도 대학을 강령과 조목으로 나누는 지는 모르겠다. 주자식으로 강령과 조목으로 나눈다면, 제가치국평천하는 親民(친민)의 조목이다(양명이 제가치국평천하를 친민의 조목으로 보지 않았다면 이 적용은 틀린다). 제가치국평천하의 동사 齊 治 平은 다스린다는 뜻이다. 齊 治 平은 親의 조목이므로 親의 구체적 내용이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과 다스린다는 말이 같은 의미라고 이해하기 쉽지않다. 특별한 주석을 달지 않는 한 말이다. 

親民(친민)으로 읽는 그 자리에서 유학, 일류보편의 고유한 진리는 사망하고 만다. 新民은 남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家 國 天下라는 상황, 오륜이라는 관계에 위치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그러한 자신을 다듬는 것이다. 그러한 다듬음을, 새로워지고자하는, 새롭게 하고자 하는(自新之民) 속성에 연결한 표현이다. 그 가운데 사랑(親愛친애 哀矜)도 있고 미움(賤惡천오 傲惰오타)도 있다(전8장). 新民은 明明德이다. 이것으로 유학이 爲己의 학임이 분명해 진다. 또한 新民(제가치국평천하)의 모습에서 爲己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親民(친민)은 爲己일 수도 있고 爲人일 수도 있는 표현이다.

 

4. 강령과 조목의 정리

 원론

실제

明明德

格物 致知

齊家 治國

平天下

新民

正心 修身

 

명명덕은 대학을 원론한, 총론한 강령이다. 이 원론을 구체화한 것이 격물 치지 정심 수신이다. 新民은 明明德에 格物의 옷을 입혀 실제화한 강령이다. 이를 구체화하면 제가 치국 평천하이다.

'新民은 自新與民으로서 명명덕의 실제 명칭'이다.

 

5. 경의 첫 구절 번역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대학의 道는 명명덕에 있다.     

    대학의 道는 신민에 있다.        

    대학의 道는 지어지선에 있다.

 

이 같이 나누어서 읽어야 세 강령이 하나가 된다. 종전의 방식(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대로 한 문장으로 읽게 되면 세 강령이 세 가지 일이 된다. 나누어 읽으면 하나가 되고 붙혀 읽으면 나누어지고 참 묘하다. 종전 붙여 읽을 적에도 지어지선이 명명덕 新民외의 별개가 아님은 알고 있었다. 이제 나누어 읽게 되면 세 강령이 모두 하나라는 것이 드러난다.

'대학의 道(도)는 명명덕에 있다'는 것은 대학을 총론한 것이다.

'대학의 道는 신민에 있다'는 것은 대학의 실제를 선언한 것이다.

'대학의 道는 지어지선에 있다'는 것은 대학의 이념을 선언한 것이다.

이 세 표현 가운데 어느것 하나를 들어도 대학의 전체이다.

아래 표에 마우스를 얹어만 보자.

제1도

新民의 내용이 明明德임을 보여준다.

 

제2도

忠恕, 孝慈, 色, 弟敬, 友愛가 明德이라는 情임을 보여준다.

 

제3도

위와 같은 明德은 오륜 관계에서 발한 情임을 보여준다.

 

제4도

오륜 관계의 사람이 곧 新民의 民의 구체임을 보여준다.

 

제1도로 돌아 간다. 新民이 明明德임이 잘 보인다.

 

  

 

 

이념강령

지어지선

실천강령

원론

실제

명명덕

신민

실천조목

격물치지

정심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