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지선 - 태학의 이념

 

번역하자면,

①至善에 지하다

②至善을 지하다

이다.

 

①로 하든

②로 하든

그 내용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서로 전한 심법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中을 잡아라)이다.

止於至善은 명명덕 신민과 함께 대학의 세 강령(삼강령)이다.

그런데,

止於至善은 하위조목이 없다.

이 때문에 止於至善이 강령이 아니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하위 조목이 없는 뜻이 있으니

그것은,

止於至善이 명명덕 신민을 제외한 별도의 다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止於至善, 명명덕, 신민이 다 一事異名(일사이명. 이름이 다를 뿐 하나의 내용)이다.

至善은 中이다.

至善의 구체적 모습이 中인 것이다.

止는 '머물다', '잡다'의 뜻이다.

편의상, '잡다'로 설명하면,

止於至善은

'至善을 잡다', '中을 잡다'이다.

요순의 執中과 부절(符節)을 합친 듯하지 않은가.

조목으로 강령인 명명덕을 대치 요약하기도 한다.

수신이 대표적인데 수신에 執中(집중)의 의미가 있다.

수신은 情無不中(정무불중)이다.

'情이 中하지 않음이 없도록 함', '과불급이 없도록 함'

이것이 執中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신(명명덕)이 執中이 아닌가!

 

명명덕은 실제에 있어서는 신민이다.

이것으로 보아

止於至善, 명명덕, 신민이 一事異名임을 알 수 있다.

모두 태학의 강령이다.

이름을 붙이자면

止於至善은 이념 강령으로 강령 중의 강령, 즉 대강령이다.

 

 

 

서경

태학

이념강령

윤집궐중

지어지선

실천강령

원론

실제

원론

실제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명명덕

신민

실천조목

 

격물치지

정심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성의

 

아래 그림에 마우스를 올려 놓아 보자. 태학과 서경을 겹친 그림이다. 약합부절(若合符節)임이  잘 보인다.

 

 

1. 至善-事理當然之極(사리로 보아 지극히 당연함)

1.1. 事理와 物理

物理를 말하는 차원은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 차원은 천리를 眞으로 본다. 수학, 순수과학, 평등 등의 이념이 시간과 공간을 고려하지 않고 지배하는 차원이다. 반면 事理의 차원은 천리를 善의 근원으로 보는 차원이다. 실용 또는 응용과학, 차별 등의 현실이 지배하는 차원이다. 물리의 차원에는 진위만 따지기 때문에 눈물이 없지만, 사리의 차원에서는 시비가 있다. 똑 같은 죽음이지만 물리로는 당연한 것(眞)이고 사리로 보면 불선이다. 물리의 차원에서는 평등이 眞이다. 그러나 사리의 차원에서는 그것이 불선이다. 현실적으로 평등할 수가 없다. 부모와 남을 차별해야 하고 가족과 남을 차별해야 한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해야 하고, 아이와 어른을 차별해야 한다. 임금과 신하를 차별해야 한다. 가진자와 없는 자를 차별해야 한다. 이러한 차별은 사리로 보아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 善이다.

1.2. 당연의 善과 당연의 極인 至善

時空이라는 것을 제약으로 보든, 덕이 되는 무엇으로 보든, 사리의 차원은 시공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당연' 역시 시공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지금 여기 이 상황에서 마땅한 것, 그것이 당연이다. 이 당연이 곧 善이다. 당연함의 경지가 지극할 경우 그것이 지선이다. 따라서 지선은 절대선이 아니다. 이금 여기라는 상황을 전제로 하는 상대선이다. 지금 여기는 家 國 天下이다.

1.3. 至善은 中

지선이 이러하다면 中이 아니고는 이러함을 대체할 말이 없는 것 같고, 그것이 中이 아니라면 中이 될 별도의 무엇이 없어 보인다. 中은 지선의 다른 이름으로서 시공의 善의 이름이다. 中은 家 國 天下라는 시공의 상황을 전제로 하고서 善의 극치를 이름한 것이다. 당연함의 극치는 과불급이 없는 경지이다.

2. 止는 執과 동의어

止는 '머무를 止'라고 하기도 하고 '그칠 止'라고 하기도 한다. 지선이 中이라고 이해하는 면에서 '그칠 止'라는 번역도 의미 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 지점에서 '그친다'고 하면 中의 의미를 지닌 번역이 된다. 그냥 지극한 善이라고 하여 지극한 곳을 염두에 두면 머문다는 번역이 더 의미 있게 된다.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 보겠다. 止는 執의 뜻이다. 執으로 해석하려는 의도는 允執厥中(윤집궐중)과 지어지선이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止와 執은 다 같은 소리를 가진 말이다. 그 소리의 기본은 손으로 '쥐다'의 '쥐'이다. 據於德(거어덕. 논어 술이 제1장)의 據(거) 역시 執의 뜻이다. 집주에서는 據於德에 '덕을 잡고 지킨다(執守집수)'는 주를 달고 있다. 據가 執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據 역시 '쥐' 계통의 소리인 것이다. 이 설명 방식은 한자에 담겨 있는 우리말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도 止가 執으로 쓰이고 있으니 이 방식의 설명과 합치한다.

3. 지어지선은 윤집궐중

지선이 中이고 止가 執이라면 지어지선과 윤집궐중은 동의어이다. 요임금은 윤집궐중을 순임금에게 과제로 전하였고, 순임금은 이 과제를 더 구체화하여 인심도심의 精一(정일)을 추가하였다. 대학은 이를 더욱 구체화 체계화하여 인심도심 정일을 명명덕으로 대치하고 그 실제를 신민으로 들었으며 윤집궐중을 지어지선으로 대치하였다. 그리고 명명덕 신민을 격물/ 치지/ 성의/ 정심 /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로 조목화하였다.  이에, 유학의 구체적이고 상세함의 큰 틀이 환히 드러난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人心은 위태하기 마련이고 道心은 미약하기 마련이다.

精一하게 대처할지니, 진실로 中을 잡아라.

-『서경』「 우서」 '대우모' -

이것을 가지고 지어지선 명명덕 신민에 비교하면 지어지선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드러난다.

 

서경

태학

이념강령

윤집궐중

지어지선

실천강령

원론

실제

원론

실제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명명덕

신민

실천조목

 

격물치지

정심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성의

대학은 지어지선 공부를 표방한다. 이러한 표방을 구체화하면, 명명덕 신민이라는 강령이 나온다. 이 강령을 한 번 더 구체화하면, 명명덕이라는 원론은 知와 行으로 요약하는 격물치지와 정심수신이 되고, 신민은 제가 치국 평천하가 된다. 이렇게 하여 공부의 대강과 조목이 갖추어졌다.

 

성선 성악에 관한 글이다. 새 창으로 준비하였다.

        성선과 성악        →열기

1.善과 惡에 대한 성찰

1.1. '善하다'와 '善이다'의 구분

1.2. '착하다'와 '좋다'의 구분

1.3. 性이란 무엇인가

1.4. 善과 악의 구분

1.5. 惡과 不善

2.순자의 性善

2.1. 순자의 성악은 출발부터 잘못

2.2. 맹자 편에서 순자를 비평한다면

3.1 성선 관련 인용글들

3.2.인용문 요약

4.맹자 성선을 말씀하시되

5.性善에 대한 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