格物

  1.物


대학에 관련한 物은 두 가지 쓰임에서 포함하는 의미 차이가 있다.

①物 홀로 쓰이는 경우와

②상대하여 쓰이는 경우가 있다.

상대하여 쓰이는 경우는

          ⓐ物과 다른 物을 상대하여 쓰는 경우,

          ⓑ事와 상대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

①상대하는 物 없이 홀로 쓰는 경우:

物은 사람이 생각하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유형무형의 모든 것이다.

 

②ⓐ인물:

'物我'의 경우 처럼, 무엇이 物과 상대하게 되면 상대한 무엇을 제외한 영역의 모든 것을 物이라고 한다. '인물'에서 物은 人을 제외한 物이다. '물아'에서 物은 나(我)를 제외한 物로서 부모 형제도 다 物에 속한다.

(나 아닌 모든 것)物

:

:

物(사람 아닌 모든 것)

 

②ⓑ物事:

'物에는 本末이 있으며 事에는 終始이 있으니(物有本末 事有終始. 대학 경1장)'에서처럼, 物과 事를 상대하여 쓰는 경우, 物은 物이고 事는 事이다.

物은 낱낱의 것으로 명사에 해당하는 것이며,

事는 物(과 物의 관계)의 작용으로서 동사에 속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明明德에서 명덕은 物이며, 明은 事이다.

'物有本末하며 事有終始하니(대학 경1장)에 따라,

다음 그림과 같이 物과 事를 구분할 수 있다. 物과 事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齊 治 平  

(各)有終始

本과 始는 所先

 

末과 終은 所後

格 致 正 修

至善

明德

物 知 心 身

(各)有本末

家 國 天下

 

- 도표의 설명

物은 物과 事로 나뉜다.

事에는 事마다 시종이 있다.

物에는 物마다 본말이 있다.

(各)有終始

(各)有本末

 

明(밝힘) / 格(나아감) 致(이룸) 正(바로 함) 修(닦음) 誠(알차게 함) , 新(새롭게 함)/ 齊治平(다스림) 등의 동사 행위는 이다.

明德/ 物 知 心 身 意, 民/ 家 國 天下 등의 명사는 이다.

平  

(各)有終始

 

至善

明德

(各)有本末

天下

 

本과 始는 먼저해야 할 것이고

末과 終은 나중해야 할 것이다.

平  

(各)有終始

本과 始는 所先

 

末과 終은 所後

至善

明德

(各)有本末

天下

셀의 색이나 글자 색에 맞추어 내려 읽으면 그대로 삼강령 8조목이다.

이러한 적용은 원론적인 것으로 대학의 내용 강령조목을, '物有本末하며 事有終始하니' 라는 원문에 따라 物과 事로 구분해 보는 것 외에 의미가 없다.

격물의 物의 실제는 이와는 다르다.

실제는 아래 줄에 있는 民 계열만이 物에 속하는 개념이다.

明德

天下

 

왜냐하면,

내 마음의 구체 모습인 意(明德)에 本末이 있다고 할 경우, 本末이  意(明德)에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家 天下(民)에 따라 내 마음인 意(明德)에 本末이 定(정)해지기 때문이다. 物이 아니면 意(明德)의 本末은 무의미하다고 하겠다. 格物의 物에 意(明德)을 배속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格物의 物은 실제에서 物我의 쓰임으로 보아야 한다.

 

 2.格


格은 뜻이 많은 말이다. 뜻 많은 만큼 생각도 달라 格物의 格을 해석하는 길도 여럿이라고 들었다. 다른 설은 연구한 바가 없어 모른다. 여기 소개하는 설이 주자의 설에 근거하여 발전한 것이므로 격물에 대한 새로운 안목도 주자의 설에 바탕을 둔 것이다.

- 하나의 조목으로서 格의 의미

 格은 至, 卽, 臨 등의 뜻이다. '나아가다, 임하다'의 뜻이다. '致知함은 格物함에 있다(致知在格物치지재격물. 경1장)'고 함은 格物함에서 致知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경우 格物은 여러 조목 중 하나의 조목으로서 이 때의 格은 '나아가다, 임하다'의 뜻이다.

 

- 대표 조목으로서의 格의 의미

 

 

천하에서

명덕을 밝히고자 한 자는 먼저 치국하였고

치국하고자 한 자는 먼저 제가하였고

제가하고자 한 자는 먼저 수신하였고

수신하고자 한 자는 먼저 정심하였고

정심하고자 한 자는 먼저 성의하였고

성의하고자 한 자는 먼저 치지하였으니

치지는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

'致知함은 格物함에 있다(致知在格物치지재격물. 경1장)'고 함에서 '在(~에 이다)'의 의미는 유별나다. 다른 조목들은 先後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格物만은 在로 연결한다.

주자는 이 말에 따라, 格物을 치지에만 국한하였고(전5장 보망 참조), 그것이 타성이 되어 격물치지라고 쓴다. 여기에서도 그대로 쓰지만, 격물은 치지에만 국한되는 조목이 아닌 것을 밝혀둔다.

대학의 일은 단지 대상만 가지고 보면 知와 情을 어찌 하는 일이다.

知를 어찌하는 것은 致知라고 하고,

情을 어찌하는 것은 修身이라고 한다. 그런데 知와 情은 그 物에 상응한다.

그 物에 그 情,

그 物에 그 知인 것이다.

부모에 대하여 孝,

자식에 대하여 慈라는 情이 발하여 이를 修할 수 있다.

생물에 대하여 반응하면 생물에 대한 知식, 정보, 지혜, 원리법칙등을 얻어 이용할 수 있다.

그 物에 그 知,

그 物에 그 情이라는 것은 참으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다면

어디서 情을 얻어 닦을 수 있으며,

어떻게 자연의 법칙을 알아낼 수가 있겠는가.

在格物은 내용으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치지에만 연결된 것이 아니다. 나머지 조목 역시 在格物이다. 格物함이 없으면 知와 行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뜻에 따라, 격물을, 조목을 대표하는 조목으로 사용여 대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대학은 격물의 학이다.

이 경우 격물한다고 함은 '物에 나아가 知와 行을 어찌한다'는 뜻이 된다. 知와 行을 어찌하는 일은 치지와 수신이다. 格은, 이 경우, 치지와 수신을 대신하는 대동사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의 공식을 보자

格物[

誠意(致知 + 修身)

]=明明德

正心

 

 

격물에 명명덕의 나머지 조목이 다 걸려 있다. 在격물이다.

격물을 당기면 나머지 조목은 자연 달려 나오게 된 구조가 대학이다.

'대학은 격물의 학'이라고 할 경우의 格은, 대학의 모든 동사, 구체적으로 誠, 致 正 修 등 대신한 대동사로 쓰일 수가 있다.

 

저 공식에서 [ ] 안의 것들은 즉 '意(知 + 身)'은 나의 마음 명덕의 구체이다. '誠(致 + 修)'는 明이 분화한 것들이다. [ ]을 경계로 하여 '나'와 '物'이 상대하고 있다. 따라서 격물의 物의 실제는 나와 상대한 物로서 物我의 쓰임이 된다.

天下

明德

위의 표에서

명덕 줄이 나의 구체이고,

民의 줄이 物의 구체이다.

 

 3.格物과 致知(知)


天生蒸民 천생증민(하늘이 사람을 내시니)

有物有則 유물유칙(物은 物마다 이치가 있도다)

- 『시경 』 「대아」 '증민 烝民' -

有物有則(유물유칙)의 物은 物 한자만 사용된 경우이다. 그러므로 格物의 物이나 마찬가지로 事를 포함한 物이다.  

하늘이 민중을 내실 때 어떤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 법칙이 있게 하였다. 대개

사람의 백해(百骸) 구규(九竅) 오장(五臟)에서부터

君臣(군신) 父子(부자) 夫婦(부부) 長幼(장유) 朋友(붕우)에 이르기까지

物 아닌 것이 없으며,

物치고 법칙이 없는 것이 없다. 이를테면,

듣고 보는 귀와 눈이 있으면, 거기에는 총명(聰明: 聰은 귀가 밝은 것이고 明은 눈이 밝은 것)의 이치가 있으며,

용모에는 공손,

말에는 순리,

君臣에는 義(의)가,

父子에는 親(사랑)의 이치가 있는 것이다(위 詩의 해설).

 

有物有則(유물유칙. 그 物에 그 法)이므로 物에 格하지 않고는 그 법칙을 구할 수 없는 사정이 격물치지라는 말을 만든 사연이 아니겠는가.

격물이 아니면 대학은 공허한 관념놀음에 머물고 만다. 격물로 인하여 대학은 실학이 되는 것이다. 物에는 物理,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에는 마음의 理(知라는 性)가 있어 마음과 物이 주파수를 맞출 수 있게된다. 物이 없이는 주파수를 맞출 수가 없다.

오늘날 格物致知라는 말의 형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말이 있다. 臨床硏究(임상연구)가 그것이다. 臨床이란 말은 格物과 뜻과 쓰임이 같다. 臨은 格과 뜻이 같고, 床은 병상을 말하는 것일 터이니 物 가운데 하나의 구체적인 物이다. 물질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에서도 格物致知는 필수이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格物致知를 格致로 줄여서 「학문」 또는 「학문하다, 연구하다」는 뜻으로 썼다고 한다. 格致는 서양말 「-사이언스(science)」, 「-로지(-logy)」와 유사한 표현으로도 사용한 것이다. 무슨무슨 格致라고 하면 무슨무슨 學이란 뜻이었던 것이다. 格物致知는 조목으로는 두 개이나 사실 하나의 궁리, 연구이다.

致知에서 심오한 뜻을 찾으면 안된다.

치지는 빈 그릇일 뿐이다. 대학이라는 학문에서 修身이라는 行의 영역에 대하여 앎의 영역을 표현한 것에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의미는 영역의 확보라는 데 있을 뿐이다. 格物은 致知의 대상과 방식, 致知의 가능 근거를 밝힌 것에 의미가 있다. 격물치지일 때에만 치지가 치지일 수 있다.

4. 격물과 수신(行)


위에서 인용한 것을 다시한 번  보자.

하늘이 민중을 내실 때 어떤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 법칙이 있게 하였다. 대개

사람의 백해(百骸) 구규(九竅) 오장(五臟)에서부터

君臣(군신) 父子(부자) 夫婦(부부) 長幼(장유) 朋友(붕우)에 이르기까지

物 아닌 것이 없으며,

物치고 법칙이

없는 것이 없다. 이를테면,

듣고 보는 귀와 눈이 있으면, 거기에는 총명의 이치가 있으며,

용모에는 공손,

말에는 순리,

君臣에는 義(의)가,

父子에는 親(사랑)의 이치가 있는 것이다(위 詩의 해설).

 

인용문을 보면 知에 관한 것도 있도 行에 관한 것도 있다.

'사람의 백해(百骸) 구규(九竅) 오장(五臟)'과

'듣고 보는 귀와 눈이 있으면, 거기에는 총명의 이치가 있으며' 운운한 것은 대개 知에 관한 것으로 보면 쉽고,

'君臣(군신) 父子(부자) 夫婦(부부) 長幼(장유) 朋友(붕우)'와

'용모에는 공손, 말에는 순리, 君臣에는 義(의)가, 父子에는 親(사랑)의 이치' 운운은 대개 行에 관한 것으로 설명하면 쉽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군신 부자 부부 등의 관계에도 치지의 일이 있다. 有物有則(유물유칙. 그 物에 그 法)의 설명에 知와 行에 관한 것이 다 들어 있음을 확인하면 된다.

수신은 情에 관한 일이다. 情의 표현이 과불급이 없도록 조정해 내는 공부의 명칭이 수신이다. 따라서 情이 있어야 어찌 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情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孝 弟 慈 등의 마음이다.

孝란 부모에 대하여 발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弟는 형제에 대하여 발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慈는 자식에 대하여 발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부모 형제 자식에 格하지 않고 이러한 情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부모 형제 자식 등인과 더불지 않고 어떻게 이러한 情을 修할 수 있겠는가.

치지만이 격물 치지가 아니라 수신 역시 격물 수신이 아닌가.

집중(執中)을 가지고 격물이 行에 관여한 것을 보자.

允執厥中(윤집궐중. 진실로 中을 잡아라. 서경 대우모)하라고 요임금이 순에게, 순임금은 이를 받아 다시 禹(우)에게 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中이란 과불급이 없는 마음의 경지이다. 단지 선일변의 고유한 사람의 마음 자체만으로도 中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이 中은 과불급이 없는 中節(중절)의 中이 아니다. 집중의 中은 다만 마음이 아니고, 과불급이 없는 마음(상태)이다. 이걸 잡아야 한다는 것이 집중이고 수신이 바로 이런 것 하는 것이다. 시공이라는 物의 상황이 아니면 어디서 中을 잡을 수 있겠는가. 物의 환경이 아니면 中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5. 대학의 物(家 國 천하의 物과 民)


위에서 본 대학의 공식을 다시 보자.

격물을 앞으로 뽑은 것이다.

格物[

誠意(致知 + 修身)

]=明明德

正心

 

 

 

 物에 家를 대입하면 명명덕은 제가가 된다.

格家[

誠意(致知 + 修身)

]=齊家

正心

 

 

意는 家에 대한 意가 되고

知는 家에 대한 知가 되고

身은 家에 대한 精이 되어

명명덕의 실제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제가인 것이다.

치국 평천하도 마찬가지 명명덕의 실제 모습이다.

 

物에 國을 대입하면 명명덕은 치국이 된다.

格國[

誠意(致知 + 修身)

]=治國

正心

 

 

 

物에 천하를 대입하면 명명덕은 평천하가 된다.

格天下[

誠意(致知 + 修身)

]=平天下

正心

 

 

 

가국천하를 民으로 수렴하여 物에 대입하면 명명덕은 신민이 된다.

格民[

誠意(致知 + 修身)

]=新民

正心

 

 

 

명명덕 조목인 격물의 物에 따라 똑같은 명명덕이 제가도 되고 치국도 되고 평천하도 되고 신민도 된다.

어쨌거나 제가 치국 평천하가 명명덕과 같은 일이라는 것이 저 物로 말미암아 밝혀진다.

家 國 天下를 하나로 집약할 수 있는 단어가 民이다. 제가 치국 평천하를 民으로 요약한 것이 신민이다. 따라서

신민은 남을 어쩌는 것이 아니라 그 남에 대하여 발하는 내 마음의 中을 잡는 일이다.

제가 치국 평천하는 家 國 天下를 어찌하는 것이 아니라 家 國 天下에 대하여 발하는 내 마음의 中을 잡는 일이다.

 

6. 격물은 知行을 일관하는 道


그 物에 그 知

그 物에 그 情

知와 情은 대학의 전 영역이다. 物이 이 영역을 다 점하고 있다. 그러므로 격물은 대학을 관통하는 조목이다. 格物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공허하게 된다. 格物은 이의 반영으로 知와 行을 일관하는 대학의 道이며 일류 보편의 道이다.

格物사상은 物外無心(물외무심. 物 떠나 心 없음) 이라는 실천사상이다. 心外無物(심외무물. 마음밖에 物이 없음)이라는 원론 차원의 말을 실제인 것으로 착각하지 말자. 실제는 物外無心일 뿐이다. 物外無心 속에 心外無物도 의미가 있다. 物外無心의 실천 없이는 心外無物은 공염불일 뿐이다.

대학의 격물사상은 物外無心 사상이다.

원론(心外無物)을 초월한, 공허함을 뛰어넘은 사상이다.

誠意도 格物誠意, 修身도 格物修身, 正心도 格物正心이다.

격물은 대학을 일관하는 도이다.

그러므로 격물을 가지고 대학을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은 격물의 학이다.

대학은 격물에 있다.

 

格物[

誠意(致知 + 修身)

]=明明德

正心